리포트 |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8

동아서점

평범함을 말하는 여섯 개의 단어


에디터 : 김건태 | 포토그래퍼 : 안가람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책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하지만 서점에는 존재한다. 나는 지난 시절 새롭게 열었다 문을 닫은 몇 개의 서점들을 안다. 많은 작은 것들이 그렇듯 서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던 중 동아서점을 알게 됐다. 62년간 3대에 걸쳐 서점을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62와 3, 그 특별한 두 개의 숫자가 나를 속초로 이끌었다.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작은 할아버지였다. 김종록 씨는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3년 뒤인 1956년, 동아서점의 전신인 동아문구사를 세웠다. 당시 30평 남짓한 공간에서 문구류와 책을 함께 팔았고, 이는 속초에 생긴 최초의 서점이기도 했다. 그는 원칙주의자였다. 대개의 가장들이 그랬듯 가부장적이고 엄한 성격으로 흔들림 없이 서점을 운영했다. 고시 공부를 하던 아버지 김일수 씨는 병원에 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서점을 보다가 그 길로 서점의 주인이 됐다.


당시 서점 일이란 학교를 상대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숫기 없는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나 다름없었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묵묵히 일했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서점은 잠깐의 호황기를 지나 끝없는 불황의 시대를 지나게 됐다.


때는 2000년대 어느 날, 김일수 씨는 매장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며 파리를 쫓기 바빴고, 마침 저녁 술 약속에 가기 위해 평소보다 서둘러 문을 닫았다. 그 시각 불 꺼진 서점 지하에는 미처 책을 고르지 못한 손님이 있었다. 무술 관련 책을 사러 오는 몇 없던 단골손님이었는데, 자신이 갇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서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난 후에야 주인이 자신을 두고 나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창밖으로 구조를 요청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됐지만, 당시로서는 오죽 손님이 없으면 그런 실수를 할까 모두가 씁쓸한 표정을 짓던 사건이었다.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아들


2015년, 아들 김영건 씨가 서점 문을 새롭게 다시 열었다. 그는 서울에서 공연기획 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서점을 놀이터 삼아 자라왔지만 자신이 이곳의 주인에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속초에는 백화점과 독립영화관, 동남아음식점이 없었다. 하지만 편집자가 꿈이던 아들에게 당시의 직장은 10년 후가 그려지지 않는 일이었다. 때마침 아버지의 제안이 있었고, 아들은 3대에 걸쳐 서점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직접 서점을 운영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아들의 눈에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했다. 가장 먼저 서점의 모든 책을 반품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주문했다. 기존 목록과 겹치는 책도 분명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랜 책을 새로운 서가에 꼽을 수는 없었다. 뒤이어 책의 배본 방식을 바꿨다. 일정 규모 이상의 서점은 도매상에서 순위에 따라 신간을 받고 반품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는 모든 책을 하나하나 직접 고르길 원했다. 4만여 권의 책을 일일이 고른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나중에는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점에 손님이 온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누군가 책을 사 가면 그 감동이 아주 크게 오기도 했고요. 책을 주문할 때 특정 손님의 얼굴을 떠올려요. 그가 분명 좋아할 거야, 하면서요. 그렇게 고른 책을 손님이 알아봐줄 때 정말 짜릿한 기분이 들곤 했어요.”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책장


새로 태어나는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매일매일 출간되는 책이 모두 꽂히기 위해서는 무한히 늘어나는 책장이 필요할 터였다. 서점을 맡게 되었을 때 아들의 고민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새로 들여올 책과 기존 책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처음에는 추가로 책장을 들였다. 하지만 곧 공간의 한계에 부딪쳤고, 일정한 수량을 유지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는 법과 강조하는 법을 배웠다. 좋아하는 책이지만 팔리지 않으면 과감히 돌려보냈다. “4만 권이면 종합서점치고는 아담한 수준이에요. 선택이 필요했죠.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부터 내려오던 종합서점의 콘셉트를 포기할까도 고민했는데, 그 파도를 거스를 수는 없었어요. 서가 운영은 제 마음대로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서점에 바둑 책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서울에서라면 몰라도 이곳 속초에서는 그런 책을 찾는 손님 하나하나까지 소중한 거라고 말이에요.” 시대는 변했고, 운영은 아들이 훨씬 더 전문적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단순히 옛날 사람의 고집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오랜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아들의 동아서점을 좋아하는 손님과 아버지의 동아서점을 좋아하는 손님 모두에게 열린 곳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책을 배치하고 책장을 새롭게 꾸미는 건 순전히 아들의 몫이었다. 널찍한 서점 내부에는 일정한 여유를 두고 매대를 설치하고, 테마별로 인접성 높은 책들을 한데 모아두었다. 가령 ‘초보 중년을 위한 실전 가이드북’이라든지 ‘쓰잘데기 없이 고귀한 기술들의 목록’처럼 일반적인 도서 분류보다 친근하고 구체적인 구분이었다. 또 하나, 종합서점에서는 흔치 않은 독립서적을 판매했다. 그건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일로, 교보문고 같은 커다란 종합서점과 특정 장르에 집중하는 작은 서점 사이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오랜 경험을 존중하되 사회적 흐름에 맞춰 조금씩 변하는 것. 모든 것은 책장을 다시 꾸미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손님


아들에게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서점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은 노인으로 풍수지리 책이나 지도를 사러 자주 서점에 온다. 연세가 많은 편이지만 아주 쾌활한 성격으로, 한 번 다녀가면 서점에 활기가 돈다. 책은 늘 현금으로 계산하는데, 항상 부채처럼 펴서 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인은 자취를 감췄다.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단골을 바꿀 이유가 없는데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앞선다.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기분이 아득해진다고.


또 한 명의 손님은 어느 여름에 나타났다. 민소매의 얇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인문학 서가에서 한참을 미동도 없이 책을 골랐다. 몇 번의 재방문과 관찰. 그녀는 아버지도 기억할 만큼 멋진 여자였다. 아들은 몇 달의 연애 끝에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서점을 꾸린다. 아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동반자이자 조언자다. 손님의 시선으로 객관적인 조언을 해준다. 서점의 많은 디테일 역시 그녀의 솜씨로 이뤄진 것들이었다.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고민


아버지와 아들, 아내가 함께 힘을 모은 결과 서점은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서점에 오려고 일부러 속초를 찾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깔끔한 모습도 좋지만 가끔 지난 세월 몸담던 작은 서점이 그립다. “예전에는 출장을 많이 다녔어요. 멀리 갔다가 한계령이나 진부령을 넘어오면 벌써 바다 냄새가 올라와요. 저한테는 그게 고향의 냄새인 거죠. 그렇게 고된 몸으로 서점에 들어오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가끔 그게 생각나요.”


아들의 고민은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이야 아내와 함께 정성을 들여 서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둘이 자리를 비워도 누군가가 매뉴얼대로만 운영하면 무리가 없는, 구조적인 보완이 필요했다. “서점 외적으로 저희의 삶에 고민도 있는데요. 최근에 속초에 친구들이 생겼는데 부부가 함께 서점을 비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것 역시 시스템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일이겠죠.” 타당한 고민이었다. 사람들은 여유를 찾기 위해 서점에 들르는데, 정작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일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영건 씨는 조금 웃었다. 여운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 웃음이었다.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좋은 서점


“단점이라면 백 개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손님의 시선으로 서점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달라는 요구에 영건 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제일 큰 단점은 마땅히 찾는 책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고요. 장점이라면 기대를 버리면 무언가를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발견의 기대를 버리면 오히려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말. 언뜻 말장난 같은 이 말의 의미는 곧 다음 질문과도 이어졌다. “좋은 서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최근에 자신이 추천사를 쓴 한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의 저자가 어느 날 도쿄의 한 골목에서 길을 잃어버렸대요. 그러다가 우연히 책방에 들어가게 됐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어서 오라는 인사만 하고 바로 자기 일을 하더라는 거죠. 책을 골라 계산을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건넨 첫마디가 ‘꽃샘추위인 것 같네요.’였대요. 집에 가서 책을 서가에 꽂아두는데, 그 책만 보면 꽃샘추위가 생각난다고요. 결국 좋은 책방은 사람을 생각하는 책방인 것 같아요. 단순히 서비스가 좋고 할인을 해주는 게 전부는 아니겠죠.”


사실 서점에서 파는 책이야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기성품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의 단골이 된다는 건 그곳만의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의 아득함, 매장을 채우는 향과 음악, 분위기, 할인율, 주인과의 친분, 통유리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반듯함, 그리고 꽃샘추위를 말하는 무심한 듯한 세심함. 사실 좋은 서점을 만드는 요소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 모든 걸 충족시킨다고 그곳이 모두 동아서점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늘 동아서점일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동아서점이 있고, 그건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유한 이유로 좋은 서점이 될 테니까.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동아서점 주인 부부가 추천하는 여섯 권의 책


01) 나의 두 사람

김달님 | 어떤책

“조부모가 키운 손녀딸이 삼십 대 어른이 되어서 어릴적 이야기를 쓴 책이 에요. 주변의 평범한 삶의 감동적인 지점을 공유하는 것이 좋았어요.”


02) 음악 혐오

파스칼 키냐르 | 프란츠

“미학 분야의 책이라 어려울 수 있지만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교양서로 좋아요. 책이 예뻐서 꽂아놓기만 해도 인테리어 효과도 얻을 수 있죠.”


03)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 루페

“‘아일랜드 북스’라는 가상의 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에요. 나름의 반전도 있고, 추천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 책이에요.”


04)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 이봄

“주인공 세 명이 숲에서 겪는 일들을 만화로 그렸어요. 숲에서 무언가를 보고 깨닫거나 생각에 빠지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이에요.”


05) 환자 H.M.

루크 디트리치 | 동녘사이언스

“뇌 실험으로 피해를 입은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의 이야기를 통해 의학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해요. 수술 집도의의 외손자인 저자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고발하죠.”


06)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오경아 | 궁리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가드닝 방법을 열두 달에 나눠 제시한 책이에요. 실제 그림도 그려져 있어 보기에도 편하고요.”




62년간 3대에 걸친 동아서점

가업을 잇는 서점 이야기는 다분히 신화적인 소재다. 하지만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이전부터 그들은 조용한 서가 한쪽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왔다. 매일매일 양치를 하듯이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다시 나를 속초로 이끈 62와 3에 대해 생각해본다. 특별한 숫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 평범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00년이든 10년이든 서점이 앞으로 얼마나 더 평범하게 자신의 길을 갈 지는 알 수 없겠지만,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글 때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건 여느 날보다 편안한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동아서점


주소 강원도 속초시 수복로 108

홈페이지 facebook.com/bookstoredonga

전화 033 632 1555

영업시간 매일 09: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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