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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무신사 매거진]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3 목록으로 이동
돌아온 스포츠웨어, 고샤를 바라보다

The Brief by Hong Sukwoo


에디터 :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에디터


꽤 오래 전처럼 느껴지지만 2000년대 초반은 ‘테일러드 재킷’의 시대였다.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편집증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한 디올 옴므(Dior Homme)가 중심에 있었다. 거리의 깡마른 소년들은 헐렁한 청바지와 트랙탑 재킷 대신 테일러드 재킷과 날카로운 가죽 구두를 구매 목록에 몰렸다. 그리고 또 훌쩍 10년이 지났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스포츠웨어’의 시대가 왔다. 그 중심에 청년 문화가 존재하고,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가 있다.



고샤 루브킨스키는 누구인가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 Gosha Rubchinskiy.

스킨헤드, 쌍꺼풀 짙은 눈,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티셔츠를 걸친 백인 청년은 전형적인 러시아 젊은이 중 하나로 보인다. 바로 고샤 루브친스키(이하 고샤)이다. 몇 권의 사진집을 펴낸 사진가이자 영화감독이며, 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수많은 러시아식 이름 중 하나가 아니라, 일종의 고유 명사로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숭배를 받는다.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설립자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의 전폭적인 지원과 본인의 재능이 낸 상승효과로 고샤는 이른 시간 안에 세계 패션계를 이끄는 위치에 섰다. 또한, 그는 2010년대의 청년 문화, 즉 유스 컬처(Youth Culture)의 중심에 있다. 고샤의 컬렉션과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낸 전형성은 90년대 복고풍 스포츠웨어(Retro Sportswear)가 복고적이지 않게 동시대 문화로 편입한 요즘 흐름과 흥미로울 정도로 궤를 같이한다.


자신의 컬렉션을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인 이래, 고샤가 제시한 남성복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서쪽 지역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High-End Streetwear)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젊은이들이 처음 마주한 것은 생소한 러시아어가 찍힌 그래픽 티셔츠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어색한 스타일링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래퍼들처럼 으스대는 느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스케이트보더들과 비슷하게 치장했지만, 한눈에 드러나는 빈티지 요소가 섞였다. 깡마른 스킨헤드 소년들이 무톤 소재 가죽 재킷과 어울리지 않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그 아래 아디다스의 스웨트팬츠를 입는 식이다. 그의 컬렉션을 처음 접한 패션 관계자 대다수는 이 ‘불균형’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젊음을 보았다.



러시아, 그리고 고샤의 다른 점들


정치•사회적으로 중국 못잖게 폐쇄적이던 러시아는 세계 정치-지정학-경제 관점에서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자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세계 어디서나 축구와 농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모스크바 젊은이들에 주목한 이들은 없었다는 뜻이다. 풍부한 재력과 부모님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과 일본, 런던과 파리의 패션 브랜드를 ‘소비’하던 동시대 각국 청년 문화와 러시아의 그것은 교집합이 있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았다. 


고샤가 사진으로 담은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을 보자. 그들은 고샤의 컬렉션 무대에 선 모델들과 닮았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티셔츠와 빈티지 청바지의 스케이트보드 패션, 부모님 옷장에서 고른 촌스러운 헌 옷, 빈티지 의류 매장에서 발견한 약간 기이한 스타일의 혼합이다. 그들도 LA와 런던 젊은이들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지만, 세련된 새 옷과 스니커즈로 꾸민 서구권 젊은이들과는 다른 감각을 지녔다. 그리고 이는 일부러 멋져 보이도록 의도한 게 아니라, 전적으로 러시아-모스크바가 처한 상황에 기반을 둔다.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 Gosha Rubchinskiy’s photogaphy.


고샤와 오랜 기간 친구로 지냈으며, 그의 사진집을 후원하거나 영감을 제공해온 모스크바 빈티지•고급 기성복 편집매장 <K20 Kuznetskiy Most 20>의 오너, 올가 카르푸(Olga Karput)는 러시아 패션과 고샤의 지금을 이렇게 말한다. “요즘 러시아 젊은이들은 모두 가난해요. 헌 옷 가게에서 찾은 오래된 옷과 아빠의 옷장에서 꺼낸 옷을 고샤의 옷과 섞어서 입죠. 그는 이전의 러시아 트렌드를 따르지 않아요. 고샤와 그 친구들(젊은 창작자들)은 어떠한 영감의 원천이나 의견을 구할 때, 결코 멋진 패션 잡지들을 신뢰하지 않죠. 그들이 신뢰하는 것은 자기 자신들입니다. 자기가 벌이고 무언가 만드는 일에서 스스로 영감을 얻길 바라는 거죠.”



고샤가 스포츠웨어를 다루는 방법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 Gosha Rubchinskiy Fall/Winter 2017 collection.

2017년도 F/W 고샤 루브친스키의 컬렉션을 보자. 휠라(Fila), 카파(Kappa) 등 1990년대 복고풍 스포츠웨어의 유행을 이끄는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유독 다양한 협업을 진행한 고샤는 파리를 떠나 모국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주에서 컬렉션을 열었다. 이번 시즌 협업 상대는 아디다스(adidas)였다. 아디다스의 수많은 라인 중 패션에 집중하기로 유명한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라인이 아닌 퍼포먼스(adidas Performance) 라인과의 협업이다. 유행의 중심에 선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웨어의 협업을 하나의 통과의례로 본다고 해도 이 부조화는 조금 새롭다. 하지만 무대에 선 앳된 러시아 청년들의 스타일을 보면 그 이유는 제법 수긍이 간다. 더플코트를 변형한 청록색 울 재킷에 붉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모델은 검정 삼선(3 Stripes)이 들어간 흰색 트레이닝 팬츠를 입었다. 새하얀 트레이닝 수트에, 바지 밑단은 스포츠 양말 안에 욱여 넣은 스타일링도 정겹다. 체크무늬 재킷과 복고풍으로 깃이 넓은 셔츠를 겹쳐 입고, 그 위에 스포츠파카와 통 넓은 청바지를 입은 모델도 눈에 띈다.


‘패셔너블하게 변형한 스포츠웨어 브랜드’를 입는 러시아 청년들은 고샤의 머릿속에 없다. 대신, 빈티지 스포츠웨어를 구해서 닳아 헤질 정도로 입은 빈티지 재킷이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스니커즈와 함께 입은 오래된 친구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고샤가 제안한 스포츠웨어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들이 패션과 협업할 때 내세우는 공식을 깨부순다. ‘패션’의 경계에 속해 있으면서, ‘기능’을 강조하지 않고, 디자이너 자신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역 문화’와 스트리트웨어 요소를 강하게 담는다. 사실 이러한 스타일링 요소는 고샤와의 협업으로 널리 알려진 이전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캡슐 컬렉션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하위문화, 차브, 버버리, 그리고 다시 고샤


고샤 루브킨스키와 스포츠웨어의 상관관계
© Gosha Rubchinskiy x Burberry capsule collection for Spring/Summer 2018.


영국 노동계급 젊은이들이 입는 허세 가득한 가품 의상, 인조 보석, 구겨진 스니커즈와 야구모자, 빈티지 트레이닝복으로 상징하는 ‘차브(Chav)’는 위키피디아는 물론 유서 깊은 백과사전에도 신조어로 등록된 단어다. <트레인스포팅>처럼 영국 밑바닥 젊은이들을 다룬 영화를 보면, 굳이 공식처럼 외우지 않아도 ‘차브 스타일’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차브는 럭셔리 패션 시장, 특히 영국 브랜드들에게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차브족 젊은이들이 유독 좋아한 패션 브랜드는 버버리(Burberry)였다. 고급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로써 그 유명한 체크 패턴을 다양하게 변형하고 진화해온 버버리는 시시껄렁한 이미지의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차브 스타일에 자신의 브랜드가 자리매김한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리트웨어와 고급 기성복 문화가 만나고, 유명인사들이 차브 스타일을 수용하면서 ‘고급 기성복’의 스타일링 공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발렌시아가의 2017 F/W 컬렉션을 보라. 누가 봐도 1990년대 초중반 어반 스트리트웨어(Urban Streetwear)의 재래다. 후드 파카 위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2017년 패션 잡지들의 셉템버 이슈(September issue)를 점령한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017년 6월에 열린 2018 S/S 남성복 컬렉션 시즌, 고샤 루브친스키는 다시 한번 신선한 협업을 선보였다. 버버리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은 런웨이 무대 말미에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반소매 피케 셔츠와 펑퍼짐한 레인코트, 대놓고 드러낸 버버리의 전형적인 체크무늬 셋업, 자신의 이름과 축구공을 자수로 새긴 트레이닝복 바지와 물 빠진 1980년대 스타일의 청바지가 있었다. 브랜드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 않던 ‘차브’ 룩의 전형은, 모스크바 친구들의 정서와 생활을 담아낸 스트리트웨어로 신선한 충격을 안긴 고샤의 청년들과 일맥상통하였다. 그의 스포츠웨어는 ‘스포츠’를 호소하는 데 소구하지 않고, 복고풍 일상복의 퍼즐 조각으로 다시 한번 재미를 주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고샤 루브친스키가 새롭게 정의한 스트리트웨어, 그리고 스포츠웨어의 개념은 사실 서구권과 아시아에서도 함께 벌어진 일이다. 그만큼 ‘청년 문화’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청년 문화는 무모할 정도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모든 것을 혼합했다. 시대, 유행, 문화를 범벅한 스포츠웨어 스타일은 ‘유행’에 민감한 서구권 청년 문화에서 찾기 어려운 새로움이었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언급되는 파리나 뉴욕의 젊은이들과 다른 이러한 지점 - 즉, 서구권 중심의 유행과 스타일을 맹신하지 않는 환경 - 이 지금 모스크바를 새로운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이끌었으며, 여전히 순항 중이다.


※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의 컬럼이 무신사를 통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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