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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무신사 매거진] 영광의 순간 39 목록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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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의 순간


    영광의 순간

    천천히 읽는 일곱 스니커즈 이야기


    에디터 : 장윤수


    사연 없는 브랜드가 어디 있겠냐만 이 자리에 모인 일곱 스니커즈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각별하다. 코트에서, 트랙에서,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한 운동선수들의 발에서. 일곱 스니커즈는 각자의 시대와 영역을 풍미하며 잊혀져선 안될 족적을 남겼다. 그 영광의 순간들을 천천히 읽는다.

  • 영광의 순간


    이름보다 큰 영광 

    2년만에 부활한 아디다스(adidas)의 스탠 스미스(Stan Smith)는 2014년 상반기 스니커즈 시장의 큰 이슈였다. 단아한 외양으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스탠 스미스건만 어느날 갑자기 명맥이 끊겼고, 팬들은 데드스탁(Dead stock, 생산 후 여러 사정으로 창고 등에 보관되며 시장에 풀리지 않은 제품)제품까지 찾아 웃돈을 더해가며 거래하는 등 성원을 더했다. 결국 스탠 스미스는 2년만에 한결 더 단아해진 외양으로 돌아왔고, 팬들은 스탠스미스의 복귀를 두 손 들어 반겼다.


    본디 아디다스의 테니스화엔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 로버트 헤일렛(Robert Hailet)의 이름이 붙었다. 그러던 중 1971년부터 당시 두각을 보이던 스탠리 로저 스미스(Stanley Roger ‘Stan’ Smith, 미국의 테니스 선수)의 얼굴이 텅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만 하더라도 스탠리 스미스의 얼굴 밑에는 로버트 헤일렛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로버트 헤일렛의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아디다스는 그로 인한 유명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8년이 되어서야, 그리고 로버트 헤일렛이 은퇴한 이후에야 스탠 스미스는 오늘날의 스탠 스미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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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스미스는 단연 일세를 풍미한 선수였다.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세계의 테니스 코트를 석권하며 절대강자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건 스니커즈는 그 이상으로 유명해졌다. ‘스탠 스미스’란 이름이 걸린 이후 아디다스의 테니스화는 회사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팬덤을 이어갔다. 1988년 한 해에는 2200만 켤레가 팔려 기네스북에 ‘가장 많이 팔린 스니커즈’로 이름을 올렸고, 고기능성 테니스화들이 등장한 이후에도 특유의 단아한 자태로 인기를 이어가며 패션 스니커즈로써의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제레미 스캇, 요지 야마모토, 스왈로브스키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이 협업하여 각자의 독특한 스탠 스미스를 창조했고, 올해 하반기에도 패럴 윌리엄스와의 협업 컬렉션이 출시될 예정이다. 결국 스탠 스미스에겐 영광의 시절이라 부를만한 때가 없다. 영광이 아직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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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1994 

    1990년대는 과연 농구의 시대였다. 조던, 존슨, 바클리 등 위대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연달아 등장했고 NBA는 세계적인 각광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선 농구대잔치가, MBC에선 ‘마지막 승부’란 농구 드라마가 나왔다. 어딜 가나 농구였고 누구나 농구화를 신었다. 


    리복의 시그니처 에디션들은 1990년대의 향수를 2010년대로 이어온다. 덩크로 백보드를 부수는 힘과 그 덩치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졌던 위대한 센터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조던 앞에서도 조던 보다 멋진 덩크를 내리꽂으며 시애틀 초음속군단을 이끌었던 숀 캠프(Shawn Kemp), 천재적인 기량으로 ‘Van Excellent’란 별명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태와 자존심으로 더 유명했던 ‘현실의 정대만’ 닉 반 엑셀(Nick Van Exel). 2010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사뭇 낯선 이름과 수식어들이지만 리복의 시그니처 모델들에는 그대로 남아 향수를 자극한다.

  • 영광의 순간



    에어 조던 브랜드의 연속적인 성공에 가려졌지만 정작 농구와 스니커즈가 함께 소비되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리복의 스니커즈들은 조던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위세를 떨쳤다. 샤킬 오닐을 시그니처인 샤크 어택(Shaq Attaq)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샤킬오닐의 유명세에 리복만의 인스타펌프(Instapump)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와 함께 조던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큰 인기를 누렸다. 숀 켐프의 시그니처인 카미카제(Kamikaze) 시리즈는 당대 최신이었던 리복의 진보된 기술력이 담겨 환영 받았다. 리복의 독자적인 쿠셔닝 기술인 헥사라이트(Hexalite)가 미드솔에 담겨 진보된 쿠셔닝과 함께 독특한 미감으로 인기를 누렸다. 블라스트(the Blast)는 닉 반 엑셀만큼 독특한 스니커즈 였으니 비대칭의 배색과 기능보다 멋을 우선한 듯한 명료한 디자인은 농구화와 패션의 첫 만남을 이끌었다. 그렇게 다들 일세를 풍미한 스니커즈였고, 레트로 당대의 추억을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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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을진 모르겠지만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컨버스(Converse)의 올스타(All-Star)는 당대 최고의 고기능성 스포츠 스니커즈였다. 다만 그럴 법도 한 일이니 무려 100년전의 일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컨버스 올스타는 당대 ‘유일무이한’ 기능성 농구화였기 때문이다. 1917년, 말 그대로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인 컨버스 올스타가 등장했다. 본디 방한, 등산화 등을 만들며 초창기 고무창 신발을 선도하던 컨버스인 만큼 당대의 신발들에 비견해 상대적으로 높은 접지력을 가진 고무 겉창을 달았고, 가죽이 아닌 가벼운 직물을 써 무게를 줄였다. 그리고 발목까지 감싸 점프가 많은 선수들의 관절을 보조했다. 중요히 염두해야 할 점이 있으니,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이 시도들이 100년 전에는 최초의 시도였단 점이다. 말 그대로 ‘혁신’이었다. 7년전에 등장한 최초의 아이폰, 지금은 임대폰 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그것 역시 혁신이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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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버스의 농구화가 등장하자마자 신기 시작한 어느 대학농구 선수는 새로운 신발이 가진 가능성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1921년부터는 찰스 척 테일러(Charles Chuck Taylor)가 제작과 홍보에 참여한다. 바로 오늘날까지 컨버스의 스니커즈에 붙는 그 이름이다. 선수로서 신어보며 신발이 가진 가능성을 확인한 척 테일러는 전미를 돌며 농구 클리닉을 열고 선수들에게 컨버스의 농구화를 권했다. 그리고 가시적 정체성이 조금은 미약했던 당시 올스타에 트레이드 마크가 될 측면 패치를 더했다. 그렇게 올스타는 척 테일러란 이름이 적혀 척 테일러가 홍보하는 ‘척 테일러 올스타’가 되었다. 


    선수 출신의 마케터가 권하는 신개념 스니커즈는 대학농구(NCAA League, NBA 출범 이전 미국 내 최대 농구리그) 팀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었고, 전미로 퍼져나가 청소년들의 기본 아이템이 되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바와 같다. 100년전의 소탈한 모양새를 그대로 이은 컨버스 올스타는 드러나거나 모나지 않은 채 다양한 뜻을 포섭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고, 세대와 계층, 문화와 국경을 넘어 널리 퍼졌다. 오늘날까지 7억 켤레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로 전세계 젊은이들의 신발장에 공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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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라의 레트로 컬렉션 

    여느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휠라 역시 시장을 제패한 때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 휠라의 레트로 아이템들이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휠라코리아의 대표는 100억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국내 최고액 연봉 수령자가 되어 자서전을 쓰기도 했었다.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NBA 최고의 선수들이 휠라의 농구화를 신고 코트를 누비던 때가 있었다. 최고의 선수들을 휠라는 서포터링 했고 휠라의 농구화와 함께 선수들은 전성기의 기량을 뽐냈다.


    단연 일세를 풍미한 선수들이 휠라의 농구화를 신었다. 불같은 성격으로 구단주이자 전설인 조던도 싫은 소리를 못했던, 오직 실력으로 성격 문제를 덮었던 제리 스택하우스(Jerry Stackhouse), 그런 스택하우스를 만났지만 원만한 성격으로 합을 맞추며 피스톤즈를 컨퍼런스 최강의 팀으로 끌어올렸던 그렌트 힐(Grant Hill), 185cm의 키로 218cm인, 게다가 당대 최고의 센터인 하킴 올라주원를 앞에 두고 덩크를 내리꽂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회자되는 피닉스 선즈의 케빈 존슨(Kevin Johnson). 모두 휠라의 농구화를 신고 코트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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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컬렉션 ‘헤리티지 BB’를 통해 선수들과 함께 당대를 빛냈던 휠라 스니커즈들은 다시 돌아왔다. 요즘 스니커즈에서 보기 힘든 강한 대비의 색조합, 굵직한 로고, 그리고 화려한 스타일 모두 예전 그대로다. 제리 스택하우스의 시그니처 ‘스파게티(Spaghetti)’, 그렌트 힐의 시그니처인 ‘the 95’‘the 96’, 케빈 존슨의 이름이 그대로 담긴 ‘KJ7’, 그리고 당대 거리를 누비던 ‘더 케이지’‘마인드벤더’까지 모두 돌아왔다. 영광의 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서린 스니커즈는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이 스니커즈들을 과거의 유물이 아닌 새로운 스니커즈로 대하는 세대 역시 영광의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명료히 도드라지는 패셔너블, 동시대엔 흔치 않은 스타일, 그리고 뿌리가 분명한 스니커즈를 신는다는 자부심. 이 모든 재해석이 담긴 새로운 ‘영광의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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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니츠카 기하치로의 꿈 

    오늘날엔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인 아식스(Asics)지만 그 시작은 어느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소박했다. 1949년, 전후 일본의 퇴역 군인이었던 오니츠카 기하치로(鬼塚喜八郎)는 고베에서 농구화 공장을 열었다. 군부의 무모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스포츠는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니츠카 기하치로는 농구화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보급했다. 당대의 표준이었던 컨버스의 스니커즈를 벤치마킹 했고, 창은 문어의 빨판에서 모티브를 얻은 모양을 만들었다. 선수와 감독을 쫓아다니며 의견을 물었고, 고교 운동부들에 보급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높은 완성도와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오니츠카의 농구화는 전 일본으로 퍼져나갔고, 곧 오니즈카 타이거는 일본의 국민적인 스포츠웨어 브랜드이자 스포츠 전 영역에 특화된 브랜드로 성장했다. 50년대부터 올림픽과 육상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일본 대표팀을 후원하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전설적인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역시 맨발로 뛰기를 그만두고 오니츠카 타이거의 런닝화를 신었다.


    특별한 뒷이야기가 있다. 나이키의 창업주 필 나이트(Phil Knight)는 60년대 아식스 스니커즈의 만듦새와 합리적인 가격에 감탄하여 아식스 제품을 미국에 판매하며 자본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자본과 노하우를 토대로 나이키를 시작했다. 그만큼 오니즈카 기하치로가 만든 스니커즈들은 특별했다. 일본인 다운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오니츠카 기하치로 개인의 각별한 생각은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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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동종업체들을 병합하며 아식스란 이름을 걸기 전까지 오니츠카 기하치로의 회사 이름은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였다. 날렵하고 공격적인 호랑이의 인상을 브랜드에 이어오고 싶었지만 이미 상표권을 선점한 곳이 있었기에 오니츠카는 자신의 이름이자 회사의 이름을 연결했고, 호랑이 그림 밑에 ‘Tiger’라 적어 새로운 상표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브랜드는 결국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고 사명이 바뀐 지금은 옛 영광을 기념하는 컬렉션의 이름으로 남았다. 오니츠카 타이거의 브랜드에선 멕시코66(Mexico 66) 등 아식스 초창기의 전설적인 모델들이 복각되어 출시되고 있으며, 가볍고 산뜻한 착화감과 고풍스러운 멋 덕에 패션 스니커즈로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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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던, 그 위대한 이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스포츠 프랜차이즈 상품’ 이란 명제에 에어 조던(Air Jordan) 브랜드를 제외한 그 무엇이 어울릴 수 있을까?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 이란 명제에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는 절대적인 동시에 압도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거대 브랜드 나이키(Nike) 유일의 독자 브랜드 제품군인 동시에 조던 브랜드 아래로 세대별로 수없이 다양한 디자인의 스니커즈들이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전세계 많은 팬들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이슈가 집중된다. 농구선수를 넘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육인으로 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마이클 조던의 시그니처 컬렉션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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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던 브랜드의 역사와 이야기는 어느 곳에 적더라도 지면이 모자라다. 1984년, 나이키의 디자이너 피터 무어(Peter Moore)가 조던의 팀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에서 모티브를 얻어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디자인한 ‘에어 조던 1’이 만들었고, 이는 곧 전설적인 흥행을 거두어 이후 수백여 종의 스니커즈가 에어 조던 브랜드로 출시되었다. 2014년 현재 정규 시리즈만 29탄까지 출시되었고, 퓨전, 퓨쳐 시리즈, 레트로 등 파생 제품군도 수 없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그 이야기만으로 수십 권의 책이 나올 수 있으며, 실제로 수십 권의 관련서적이 출판되었다.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의 이름이 걸린,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포츠 프랜차이즈이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이야기를 다 하기는커녕 시작조차 할 수 없단 아쉬움만을 남긴다. 황제의 치적은 이미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많거늘, 그의 유산으로 인해 지금 당장도 커지고 있기에 감히 논하는 일은 앞으로도 어렵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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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 피구라(Bella Figura) 

    몇 년 전 디아도라(Diadora)가 다시 인구에 화자되기 시작했을 때, 그것도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때 도대체 어인 영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 기억에 미루어 디아도라는 그저 축구용품이나 잘 만드는 브랜드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8년에 시작하여 반 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디아도라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단, 모두가 생각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거침이 없었다. 등산화로 시작하여 스키 부츠로 유명세를 얻었고, 70년대에는 런닝 스니커즈로 시작하여 테니스화로 정점을 찍었다. 디아도라의 테니스화를 신은 비외른 보리(Björn Borg, 1970년대를 풍미한 스웨덴 출신의 테니스 선수)는 디아도라를 영광의 정점으로 이끌었다. 다만 디아도라는 지루한 정점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가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갔고 이후 축구, 사이클, 그리고 패션 스니커즈를 거치며 총천연색의 브랜드 이미지를 쌓았다. 다시 회자되는 디아도라를 만난 시점은 디아도라가 패션 스니커즈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헤리티지 컬렉션은 디아도라가 과거에 선보였던 명작들을 복기하며 그것이 가진 멋에 집중하는 제품군이었고, 이전에 알고 있던 ‘축구화 만드는 디아도라’와는 완전히 다른 스니커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디아도라는 말 그대로 생각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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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디아도라는 세리에 아(Serie A, 이탈리아 프로 축구 리그)와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세계 최고의 로드 사이클 대회), 그리고 패션 스니커즈에 집중하고 있다. 디아도라 헤리티지 컬렉션은 마지막 영역에 속한다. 1970년대의 런닝 스니커즈, 비요른 보리가 신던 테니스화, 1980년대 맥라렌 팀이 신던 운전화 등 디아도라 역사에 획을 그은 스니커즈들이 복각되어 출시되고, 때때로는 스톤 워싱 등 고풍스러운 멋을 더할 수 있는 가공이 더해진다. 결과물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자연스러운 동시에 각별하고, 편안한 동시에 명료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특별한 정서가 있다. 벨라 피구라, 우리말로 옮기면 ‘좋은 인상’ 정도가 되는 말에 불과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져 평생을 함께 하는 관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느 때, 어느 상황이라도 최선을 다해 멋지길 노력하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기에 누구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어느 여자에게나 세련된 매너를 보이는 근간에는, 그리고 디아도라 헤리티지가 독특한 목적을 향하는 이유에는 벨라 피구라가 있다. 어느 상황에서나 멋진 남자여야 하며, 어느 목적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공정이 이탈리아에서 완결되는 유일의 스니커즈 브랜드는 그렇게 이탈리아를 충실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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