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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어라운드]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7 목록으로 이동
은밀하게 나눈 덕후의 덕담

김형규


에디터 : 이자연 | 포토그래퍼 : Hae Ran | 헤어 : 윤주 | 메이크업 : 보영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어라운드(이하 어) 사실 맨 처음 연락 드린 건 올해 3월 즈음이었어요. 그때는 아쉽게도 인터뷰가 불발됐지만, 이번 호에는 어떻게든 모시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연락을 드렸어요.


김형규(이하 김) 그때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주제가 상황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 죄송하게도 거절을 하게 되었죠.



이번 주제가 ‘마니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어요?


올 게 왔다, 싶었죠(웃음).



서재에 만화책이 1만 권 정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으로 소장한 책이 기억나나요?


그럼요, 길창덕 선생님의 <선달이 여행기>였어요. 아버지가 저에게 처음으로 추천하신 책이에요. 제 기억에 오래 남는 아버지 모습 중 하나가 주무시기 직전에 항상 백열 스탠드 곁에서 예물 시계에 밥을 주시고는 책을 보는 장면이에요. 그게 아버지의 일과였던 거죠. 그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나도 커서 저렇게 돼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읽으셨던 책 중에는 <꺼벙이> 같은 길창덕 선생님의 책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만화책을 사달라고 했더니 “그럼 이걸 한번 읽어 봐라.” 하고 처음 사주신 게 ‘어문각 클로버 문고’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 <선달이 여행기>였던 거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처럼 선달이라는 아이가 대학생 형과 함께 우리나라를 돌면서 문화유산 답사를 하는 거예요. 범어사, 불국사 등을 가죠. 당시에는 ‘명랑만화’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거의 어문각 클로버 문고를 많이 샀어요. 그때부터 수집가 기질이 발동한 거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저에게 묻지도 않고 그 책들을 사촌 동생에게 줘가지고 슬프게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때부터 제 책을 절대 버리지 말아달라고 선언했죠.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만화책을 읽었어요. 만화를 통해 무엇을배웠다고 생각하나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은사님이 계시지만 진정한 스승은 만화책이라고 생각해요. <아톰>의 만화가인 ‘데즈카 오사무Tezuka Osamu’ 작가는 실제로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고 저도 무척 존경해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의 교육을 통해 배운 것도 물론 있지만, 만화책을 통해서 삶을 즐기는 방식이나 지켜야 할 규율을 아주 많이 습득했거든요. 만화는 쉽게 뚝딱 그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 해요. 치열하게 연구하고 탐구한 거죠. 모든 만화작품이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작품들이 있거든요. 그런 작품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에 관한 고민을 하게 돼요. 물론 영화나 소설, 음악도 그런 영감이나 고민을 주죠. 하지만 만화책도 분명 그런 성찰과 기쁨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데즈카 오사무 작가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그는 이야기꾼이고 천재예요. 실제 의사인데 어릴 적부터 만화를 그리는재능이 있어서 <아톰>이나 <블랙잭>을 그렸어요. <리본의 기사>와 <사파이어 왕자>도 있고요. 아주 어마어마한 작품들이죠. 저는 옛날부터 아톰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 아들 민재의 태명도 아톰이었거든요. 아톰을보면 민재 생각도 나고 제 모습도 투영돼 있는 것 같아요.



아톰이 두 부자의 연결고리인 셈이네요.


맞아요. 인간의 형태를 띤 로봇이 아톰이에요. 단순한 로봇 만화가 아니에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를 로봇으로만 국한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이 들어간 거죠. ‘로봇 3원칙’이 있잖아요.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첫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한다, 첫째와 둘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그 내용이죠. 이 원칙이 1900년대 초반에 등장했는데 <아톰>에서 이런 내용이 자주 나와요. 인간이 아톰이나 다른 로봇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해치라는 지령을 내렸을 때, 로봇들이 겪는 갈등과 괴리감이 나오거든요.



심오한 이야기네요.


김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주 유명한 사이보그 만화인 <총몽>을 읽었어요.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인간이라는 개체를 어떤 범위까지 정의할 수 있는가예요. 인간의 기본 축으로 정신과 영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령적인 문제가 있지만, 신경이 뉴런에 연결되어 전기화학적인 신경

전도가 발생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하나의 신경에도 전위차가 생기면서 전류가 세포를 따라 흘러 들어가는 거죠. 나노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기화학적으로 순환하는 부분이 인간적인 것인데, 뇌는 인간이지만 몸이 로봇이라면 그 사람을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로봇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 애매하다는 거죠. 또 뇌만 생체 칩으로 바꾸었다고 가정할 때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로봇이라고 해야 할지도 어렵고요. 그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 50분 공부하고 10분 만화책 보는 패턴을 유지했어요.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도 듣고 망상 세계에 빠지기도 하면서요. 그런 상상을 펼치다가

만화책을 통해 이런 시간도 존재하는구나, 하며 많이 배웠죠.


만화 보면서 운 적도 있어요?


많이 울어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오열할 정도로 펑펑이요. 대학생 때 EBS에서 재방송을 해주었는데, 네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정말 슬펐어요. 파트라슈랑 우유배달을 갔다가 집에 왔는데 네로 눈에 할아버지 환영이 보이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네로 왔니?”라고 하는데, 네로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과 상실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예요. 또 네로가 목탄화를 그려서 식빵으로 그림을 지워요. 그런데 네로가 매일 버터 없는 빵을 사니까, 네로에게 애정이 있는 주인장이 몰래 버터를 넣어주거든요. 그걸로 그림을 지우니 그림이 망가지는 거죠. 그런 것도 무척 안타까웠고요. 맨 마지막에 아로아의 아버지에게 오해를 받고 성당 앞에서 네로가 좋아하는 라파엘로의 작품 〈성모승천〉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죽게 돼요. 세상을 떠날 때, ‘네로와 파트라슈는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천사들이내려와서 하늘로 그들을 인도하면서 슈베르트의 성가가 흘러 나와요.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사실 수입되는 만화가 한국 버전으로 수정되면서잘리거나 가려지고 바뀌거나 방영이 안 되기도 해요.


그런 경우 아주 많죠. 예전에는 더 심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합쳐진 건데, 왠지 모르게 만화는 약간 유치하고 어린이들한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5월 5일 어린이 날이 되면 어떤 단체에서 만화책을 모아서 태우는 행사를 하기도 했어요. 물론 만화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거든요. 오락 기능이 첫 번째인데, 특성상 재미를 먼저 추구하다 보니 어른들 눈에는 아이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았겠죠. 지금은 웹툰이 보편화되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만화책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만화가였다고 생각해요. 처음 그리는 그림이 만화일 수밖에 없거든요. 생김새를 단순화하고 특징화해서 그리잖아요. 벽화에 원시인들이 그렸던 그림처럼요. 그런데 멋있거나 감동적이거나 영감을 주는 장면을 보면 “와, 영화 같다.”라고 하고, 유치하거나 엉뚱한 것에는 “에이, 만화 같다.”라고 하죠. 만화같다는 표현이 긍정적인 뉘앙스는 아니잖아요. 그런 걸 보면 만화를 대하는 인식에 조금 유치하게 여기는 시각이 있어요.



만화를 아이들을 위한 문화 산업이라고 여기는 시선이 있는 거죠.


일본 만화가 국내에 개방이 되기 전에는 해적판이나 불법 복사를 해서 소개되곤 했죠. <내일의 죠>라는 권투 만화가 있어요. ‘하얗게 불태웠다.’라는 대사가 유명한 만화요. 당시 MBC에서 방영을 했고 가수 김종서 씨가 주제가를 불렀어요. ‘죠’라는 인물은 일본 시부야에서 활동하는 선수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한국 사람으로 바뀌었거든요. 일본인이 한국인으로 수정되니 내용상 문제가 생겨요. 원본에서 한국인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올 때, 죠가 우리나라에 와서 동대문 체육관에서 싸우거든요. 그때 한국인 선수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요. 한국 전쟁 당시, 이 친구가 부상당한 병사를 보고 돌로 쳐 죽이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자신의 아버지였던 거죠. 우리나라에서 다음 편을 방송해야 하니까, 한국판에서는 그 인물을 베트남전을 겪은 동남아 선수로 나오게 해요. 그런데 배경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오고, 한글로 쓰인 전통 식당이 등장하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 주에 방송이 중지됐어요. 갑자기요. 아무런 공지도 없이요. 그런 게 가능했던 시절이었죠. <개구쟁이 스머프>도 그 친구들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일본 편에서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니까 그런 에피소드는 방영이 안 됐어요. 사회적 분위기가 허용하지 않는 거죠.


<카드캡터 체리>의 경우도 벚꽃잎이 학교를 가득 채우는 운동회 장면이 있는데, 그 편은 아예 방영되지 않았어요. 내용상 주인공의 어머니도 등장하고, 중요한 맥락이었는데 이야기가 연결이 안 되는 거죠. 벚꽃의 등장이 일본을 연상시켜서 금지되었던 것 같아요. 그 에피소드는 일본어 판으로 만 볼 수 있어요.


중요한 포인트가 전달이 안 되는 거죠. 일본과의 감정과 정서를 잘 아니까 이해는 하지만 독자로서 아쉽기는 해요.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점점 더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의 경우 아 날로그 만화책 출간 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찾아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절판되고 폐간되고 없어지니까 문화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죠.



가끔 만화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면 ‘철이 덜 들었다’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해요. ‘철이 덜 들었다’는 수식어, 어때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철 들면 죽어야죠. 조금 과격한 표현이지만요. 철이 든다. 철이 어떻게 들죠?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철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잖아요. 사실 철 좀 들으라는 말이 ‘나보고 지금 힘들어 보라는 건가?’ 하는 반항적인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철이 든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염라대왕이 판단하는 것도, 심판자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철듦에 기준이 없어요.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타인에 게 해 끼치지 않고 즐긴다면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단순히 장난감이나 만화책을 보는 것만으로 ‘철이 안 들었네.’라고 판단하기는 좀 애매한 거죠. 보통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좋아하면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천방지축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 안 한다면 문제 있는 거겠지만, 어린 시절 좋아했고, 성장하는 동안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남의 눈치를 보면서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돼요.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화책을 읽고,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장난감을 모으는 건 철이 안 든 거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에 가서 술을 즐기거나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면 철이 든 걸까요? 그건 그저 아주 개인적인 기쁨일 뿐인 거예요.



‘몰취향존중’이 결국 마니아 멸시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장점이자 단점이 정이 많고 친밀하고 관심이 많은 거예요. 이게 단점인 이유는 남들과 같지 않으면, 인정하기 어려워해요.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고 독특한 성질 중 하나인데 튀는 것에 대한 어색함이 있지 않은가 싶어요. 단일민족,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내내 강조해오기도 했고요. 다문화, 다민족이라면 이런 다채로움이 어색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옛날에는 선입견이 조금 더 심했어요. 염색하고 문신하면 “쟨 양아치야.”라는 낙인이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어른 덕후’가 된 게 무척 좋아요. 소비에 자유롭거든요. 가게에들어가서 갖고 싶은 굿즈를 왕창 사는 제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해요. “내가 어른이 됐다!” 싶거든요.


어른 덕후, 최고죠. 개개인이 좋아하는 취향은 각자가 선택한 인생의 지침이기도 해요. 어른이 되면 될수록 철이 든다는 게 금욕적으로 변해서 좋아하는 것을 한두 개씩 포기하고 줄여 나가는 게 아니에요. 그와 별개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거니까요.



만화책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런저런 방송에서 만화 이야기를 몇 번 하긴 했지만, 원인과 결과가 없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중·고등학생 때는 만화책을 사서 주야장천 봤어요. 그때 <슈퍼 닥터 K>라는 만화가 있었어요. 말 그대로 슈퍼 닥터여서 망토 안에 의료 기기를 갖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였죠. 주인공은 절대 웃지 않고 진지하게 사람들을 치료하는 역할로 나오거든요. 저는 옛날부터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의료인으로서 존경스럽고 멋있었어요. 약간 친근하게 느껴졌죠. 그러고나서 고3 때 수능이 처음 생기고 본고사가 부활했는데, 생물 본고사 문제 중 한 문제가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게 나온 거예요. 호르몬 이상에 관련된 병이 생겼으니 그 병명과 치료법을 기술하라는 문제였어요.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대학 입학 시험인 거 맞나요?


일부러 낸 문제였겠죠? 여성이 있는데 얼굴이 동그랗고 기력이 없다, 팔다리는 가늘지만 몸이 오동통하고 멍이 잘 들며 쉽게 피곤한 증상을 호소한다는 게 문제였어요. 주관식 서술형 문제였죠. 그런데 문제를 읽는 순간, 제가 봤던 만화책이 떠오르는 거예요. <슈퍼 닥터 K>에서 비슷한 인물이 등장해서 치료를 받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답을 썼죠. ‘쿠싱 신드롬’이라는 질병이고, 호르몬 문제이기 때문에 갑상선 절제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제 정답이 맞은 거죠. 면접을 하던 교수님이 면접에서 이 문제를 거의 다 못 맞혔는데 도대체 어떻게 맞힌 건지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배웠다고 했죠. “누구한테?”라고 물으셔서 “슈퍼 닥터 K한테 배웠습니다.” 했더니, 만화책인 줄 모르시고, “좋은 선생님이 계시구만.”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tvN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에서 했었어요.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러이러한 거다 하고요. 그 뒤에 작가한테 연락이 왔어요.



어떤 연락이요?


시청자 게시판에 사연이 올라왔는데 한 여성분이 이유 없이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우울 증세도 나타났대요. 그런데 병원을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니까 삶을 포기할까, 생각했었는데 <문제적 남자>를 우연찮게 보다가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랑 증상이 비슷한데?’ 하고 검사를 받아봤더니 실제로 그 질병이 맞았던 거죠. 제게도 연락이 와서 수술하기 전에 연락 드려본다고 감사를 전해주셨어요. 그때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제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일로 연결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말은 아닌데, 타인에게 해 끼치지 않고 조금 더 밝은 에너지, 좋은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의학 관련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도 그런 면인가요?


그렇죠. 그 분이 병원에서 왜 진단이 안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도움이 됐다면 무척 기쁜 일이죠.



한때 혀 안쪽을 닦을 때 혀끝을 손가락으로 잡아주면 헛구역질을 안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제가 찾았어요. 의학적으로 보면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이라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자극을 받을 때 모든 자극이 전부 뇌로 가는 게 아니라 그중 하나만 올려 보내거든요. 살짝 문이 열렸다 닫혀요. 그 순간이죠. 주사를 맞을 때 때리는 이유도, 때렸다는 느낌이 전달되는 순간에 주입을 하면 주사 바늘이 들어갔다는 것을 모르니까 하는 거잖아요. 그걸 응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역질을 느끼는 감각이 올라가는 상황에 감각을 분산시켜 보려고 손가락을 혀끝에 두고 했더니 구역질이 안나더라고요.



‘모든 덕후는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오타쿠(御宅)’라는 말이, 상대방을 높이는 말이잖아요. 남을 높이는 ‘오’, 집과 댁을 의미하는 ‘타쿠’. 하지만 오타쿠였던 유괴 살인범 때문에 안 좋은 인식이 생기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된 거죠. 사실 어떤 것에 미치지 않고서는 사회를 이끌어 가거나 혁신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뜨뜻미지근한 곳에 있을 바에는 아주 차가운 냉탕에 있거나 펄펄 끓는 온탕에 들어가서 경험하고 뭔가를 이끌어 나가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결국 마니아인 거니까요. 즐기다 보면 더 원하게 돼요. 더 궁금해지고, 이런 기능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그리고 마지막엔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만들어 봐야겠어!” 하게 되는 거고요. 사랑과 애정을 더 표현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민재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으면 해요. 국영수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게 행복과 직결된 목표는 아니니까요.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한 아빠가 하는 말인데, 이미 좋은 걸 경험해본 뒤에 나온 여유는 아닐지 궁금하기도 해요.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다녀서 할 수 있는 말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때 좋은 학교를 가는 게 제 인생의 목표였어요. 그 당시에 유행했던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면서 무척 감명 깊었어요. 비록 내가 지금은 힘들지만 대학교에 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멋있는 것을 할 수 있고, 캠퍼스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면 가면라이더처럼 변신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눈이 하나 더 생기거나 하면서요. 완전 다른 ‘나’가 되는 거죠. 그때가 되면 고난은 끝이고 행복한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거든요. 절대 아니죠. 그건 삶의 흐름이니까요. 길 가다가 램프를 주워서 램프 요정이 소원을 빌어라, 한다면 무조건 “대학 합격이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아닌 거예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가도, 그 사람이 뭘원하는지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거든요.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거네요.


민재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관찰하는데, 공부를 피 토할 때까지 해본 사람으로서, 또 성공한 주변 사람을 볼 때도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파악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게 총체적인 목표라는 의미이고, 민재에게도 그런 관심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게 부모의 몫일 거예요. 아무리 학원에 가서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도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니까요.



직업이 세 개예요. 자우림과 김윤아 씨 매니저, 치과 의사, 방송인. 그럼 이모든 게 자신의 행복과 연결이 되나요?


뭔가를 계속 해보고 싶어요. 책을 쓴다거나, 영상을 만들어본다거나 하면서요. 제가 할 수 있을 때, 제가 만족하는 정도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욕구가 계속해서 있어요. 치과 의사나 매니지먼트 일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막상 해보니까 적성에 맞아서 즐겁게 하고 있죠. 여기에 만족하고 안주하기보다는 재미있다면 다른 일도 해보고 싶어요.


만화처럼 사는 덕후, 김형규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직업군 사이에서 부딪히는 경우는 없나요?


지금은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요. 방송할 때 가장 즐거워요. 사람들과 시간을 투자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게 무척 재미있어요. 그걸 봐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건 아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분들 인생 속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만화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 만화가 제 인생에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소비하는 거니까요. 방송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이걸 보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어느 시간 들어가니까 재미 혹은 정보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니지먼트 쪽은 아주 명확해요. 원하는 게 있고, 그걸 주면 되거든요. 비즈니스적으로 A를 원하면 A를 주고, B를 원하면 못 주는 거예요. 깔끔한 곳이죠. 합을 맞춰서 진행하면 멋진 모델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보람 있어요. 치과는 약간 고통의 장소잖아요.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가면, 반응이 직접적이다 보니까 보람이 있으면서, 스트레스인 부분도 있죠. 대신 치료하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완전 몰입하고 집중하거든요. 복잡한 생각은 안 하게 돼서 좋아요.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으니까요.



피곤이 축적되지 않나요?


아내와 아들이 잠든 후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만화를 보며 놀았는데, 요즘은 그 시간을 줄이고 자요.



잠이 정말 보약이에요. 거의 하루를 잠으로 채울 수도 있어요.


푹 자야죠. 피곤하면 취미도 흥미가 떨어져요. 심드렁해지고, 우울증 초기증상처럼 나타나거든요.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흥미가 떨어지는 거죠.



이제 잠 마니아가 될 수도 있겠네요?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재미있는 꿈을 많이 꾸기 위해 잠 마니아가 될 수도 있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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