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성수를 성수답게 만든 사람들의 진심
무신사 스탠다드 (MUSINSA STANDARD) 가 선보이는 〈무신사 스탠다드 페이퍼〉는 패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안하는 브랜드 철학을 삶으로 확장해, 라이프와 커리어, 스타일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성수동엔 유행보다 오래 남는 사람들이 있다. 65년째 구두를 짓는 손이 있고, 동네의 소식을 가장 먼저 캐치하는 눈이 있고, 44년째 한 가지 맛을 지켜온 세월이 있고, 매일 같은 반죽을 다루는 정성이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성수동 곳곳에서 그 진심을 지켜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성수 수제화 명장 유홍식 & 전태수 장인
성수 수제화 골목을 지켜온 명장 유홍식 (왼쪽) 과 장인 전태수 (오른쪽)
"누군가는 이어가야 하는 일이기에,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킬 생각이다"
두 사람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면?
유홍식열두 해 전 성수동 명장전에서 수제화 명장 1호로 뽑혔다. 올해 일흔여덟, 65년째 구두를 짓고 있다. 눈 보이고 손 움직일 때까진 놓지 않을 것이다. 간판에도 '다시 태어나도 구두 만들란다'고 써 붙였다.
전태수열네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강원도 홍천에서 상경해 구두를 시작했다. 염천교, 명동, 퇴계로를 거쳐 성수동에 이르렀다. 유홍식 명장이 남자 구두를, 나는 여자 구두를 맡아 왔으니 둘이 성수동 수제화의 양대 산맥인 셈이다.
어린 시절 구두를 처음 잡았을 때의 골목과 그 하루가 궁금하다.
유홍식10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공부가 싫어서 아버지 돈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명동 뒷골목 구두 공장의 고향 선배 밑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명절에 내려가 아버지를 일주일 졸라 겨우 허락받았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재밌었다.
전태수내가 기술을 배우던 시절은 환경이 열악했다. 지하실이거나 창 하나 없는 공장에서, 매를 맞아가며 기술을 익혔다. 모질었지만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평생 지어 온 구두에 둘러싸여 자리를 지키는 유홍식 명장
성수동 구두 골목은 어떤 공간인가. 처음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바뀐 한 가지는 무엇인가?
유홍식이 공간을 만든 게 열두 해 전이다. 여덟 칸으로 시작해 오픈 때는 장사가 잘됐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수제화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때의 규모를 100으로 본다면 지금은 15 정도만 남았다. 공장들이 경기도로 많이 빠졌다. 그래도 주특기로 명맥은 잇고 있지만, 많이 아쉽다.
전태수성수동을 살리려 구청도 애를 썼다. 나는 수제화 홍보대사를 맡아 사비 이천만 원으로 광고 차량을 운영했다. 하지만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구두 한 켤레가 완성되기까지 몇 단계의 손길을 거치나. 가장 마음을 담는 단계는 무엇인가?
유홍식아침에 목욕탕 욕조에 앉아 디자인을 상상한다. 떠오르면 바로 나와 스케치한다. 큰 회사는 신상품 하나에 두세 달 걸리지만, 나는 사흘이면 진열장에 올린다. 제일 좋은 순간은 머릿속 디자인에 '필'이 꽂힐 때다. 작업은 전태수 씨와 나눠 맡는다. 전태수 씨가 패턴을 떠서 넘기면 내가 틀에 얹고 못을 박아 마무리한다.
전태수구두 한 켤레에 보통 이레가 걸린다. 디자인과 패턴, 재단, 재갑, 저부 작업까지 그 안에 마쳐야 제대로 된 구두라 할 수 있다. 가장 기쁜 순간은 누구도 해보지 않은 디자인을 요청받아 멋지게 완성했을 때다.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전태수 장인
유홍식 명장의 '제화'와 전태수 장인의 '패턴·디자인', 두 손길은 한 켤레 위에서 어떻게 만나나?
유홍식내 몫은 마무리다. 패턴과 디자인이 넘어오면 틀에 얹고 못을 박아 한 켤레로 완성한다. 전태수 씨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전태수내가 패턴을 떠 디자인하고 재단해 모양을 잡으면, 형님이 틀에 얹고 밑작업을 해 마무리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 자리에서 최고이니, 두 손길이 한 켤레 위에서 만나 하나가 되는 셈이다.
50년 넘게 변하지 않은 한 가지와, 해마다 바꿔온 한 가지가 있다면?
유홍식바뀌는 건 순간순간 새 모델이 나온다는 것, 안 변하는 건 마음가짐이다. 손 놓는 날까지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구두를 하겠다'가 내 소신이다.
전태수나 역시 열네 살부터 구두 한길을 걸어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 직업에 대한 긍지고, 해마다 바뀌는 것은 디자인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도 계속 바뀌어 간다.
전태수 장인의 JS슈즈디자인연구소
그동안 만들어온 구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켤레가 있다면?
유홍식명장이 될 때 만든 신발이 내 '효자 신발'이다. 내 머리에서 나온 디자인으로 명장전에 냈는데, 그게 명장으로 이어졌다. 그 신발 덕에 이름도 붙고 값도 올라서, 그제야 먹고살 만해졌다.
전태수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엘튼 존의 구두다. 의뢰를 받아 굽이 10센티미터나 되는 구두를 지어드렸는데, 무척 기뻐하셔서 나도 흐뭇했다.
운영하는 교육소·연구소에는 어떤 제자들이 오나. 그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한마디는?
유홍식내 밑에서 배운 사람들은 다 흩어졌다. 마흔 명쯤 왔는데 끝까지 남은 사람이 없었다. 기본 4~5년은 배워야 하는데 요즘은 7~8개월 만에 다 배우려 하니, 가르치는 건 접었다. 그래도 스스로 미쳐서 하는 사람이 성수동에 몇 있다.
전태수나도 제자를 길러 보려 애를 썼다. 2010년 무렵 성동구청 무료 교육을 일 년간 맡아 스무 명씩 가르쳤지만, 여섯 달로는 기술을 익힐 수 없었다. 재주 있는 이도 오래 머물지 않으니, 지금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게 근심이다.
손수 지은 구두를 든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
다음 세대의 명장이 반드시 닮길 바라는 점과, 반드시 달라지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유홍식남들 안 만드는 구두를 색다르게 만들어 당당히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기술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직업을 좋아해야 성공한다.
전태수나는 구두 학교를 세우고 싶다. 구두 박물관을 오래 청해 왔지만, 이제는 사비를 들여서라도 이루려 한다. 다음 세대는 손흥민처럼 제대로 된 학교에서 처음부터 배우고, 구두에 진정으로 미친 이들이 나와서 뒤를 이어주길 바란다.
'성수는 내게 ○○이다.' 한마디로 채운다면?
유홍식성수는 나에게 '구두로 화려하게 살다 가는 곳'이다.
전태수성수는 내게 '암흑과 희망, 그리고 행복'이다.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이 평생을 다해 지어 온 구두들이 켜켜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성수 로컬 매거진 <성수교과서> 제레박
소상공인을 응원하는 성수 로컬 매거진 <성수교과서> 제레박
"잘 될 콘텐츠에 누구보다 빨리 깃발을 꽂는 것, 그게 핵심이다"
<성수교과서>와 제레박 (박진우) 을 각각 소개한다면?
제레박<성수교과서>는 'Supporting Local Business'를 미션으로 삼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수 상권을 위해 소상공인을 가장 먼저 응원하고, 팔로워들에게는 성수동의 공간과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하는 계정이다. 나 개인은 16년 차 올라운드 마케터다.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소비재 마케터를 거쳤고, 지금은 회사를 나와 성수동에서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이기도 하다.
'성수는 나를 성장시킨 조력자'라고 했는데, 반대로 성수에 무언가를 '갚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제레박성수는 원래 타지에서 오신 다양한 사장님들이 자리 잡는 상권이다. 그러다 보니 매장을 안착시키기 바빠, 서로 협업하거나 소통할 여유가 적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매장끼리 협업을 연결해 주고, 그 행사를 계정에서 알리며 상생 분위기를 만들었다. 요즘은 매장들이 자발적으로 협업하는 걸 보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됐다고 느낀다.
'잘 되는 콘텐츠'를 가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제레박타 커뮤니티나 플랫폼에서 인기를 끄는 이슈, 아티스트, IP 행사를 인스타그램에 가장 빠르게 올리면 대체로 알고리즘을 탄다. 우리끼리는 이걸 '깃발을 꽂는다'고 표현한다. 잘 될 콘텐츠에 누구보다 먼저 깃발을 꽂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러려면 요즘 트렌드에 밝아야 하니, 커뮤니티와 트렌드 뉴스레터를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성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전하는데, 평소 취재와 기록은 어떻게 하나?
제레박우선 카카오톡 뉴스봇에 '성수', '서울숲' 같은 키워드 알림을 걸어두면, 관련 뉴스를 실시간으로 가장 빠르게 잡을 수 있다. 매장이 새로 생기고 사라지는 소식은, 일주일에 서너 번 직접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확인하거나 팔로워 제보를 참고한다. 신규 식당·카페는 정부의 영업 신고를 주 1회 확인해 상호를 적어 뒀다가, 지도에서 오픈 날짜를 미리 챙긴다. 그리고 팝업 소식은 '팝가' 앱과 무신사·올리브영 같은 플랫폼 SNS로 확인한다.
매장 하나하나를 직접 걷고 담는 제레박의 <성수교과서> 취재 현장
무엇을 소개할지 고를 때, 특히 동네 소상공인을 대하는 마음이 궁금하다.
제레박나는 성수동을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라고 생각한다. 백화점 MD가 모객이 되는 F&B를 고심해 배치하듯, 성수라는 백화점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은 결국 소상공인의 개성 있는 매장에서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매장이 모여야 상권의 다양성도,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어지고, 그것이 다시 찾는 이유가 된다. 오래가는 상권의 핵심은 소상공인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늘 그 마음으로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커뮤니티까지 운영하는 이유는?
제레박<성수교과서>가 하나의 브랜드보단 로컬 플랫폼으로 성수에 자리 잡길 바랐다. 내가 처음 성수에 왔을 때만 해도, 이 동네를 두고 서로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나눌 채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오픈채팅방도, 서울숲 플로깅도 하나의 플랫폼처럼 돌아가고 있어,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다.
큰 브랜드 행사와 동네 상권이 함께 사는 '지역 상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고 보나?
제레박무신사는 무진장, 뷰티 페스타, 이구키즈 서울숲 오픈처럼 성수에서 행사를 열 때, 로컬 매장과 협업해 슬리브를 제작하거나 쿠폰을 증정한다. 방문객이 소상공인 매장까지 자연스럽게 들르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초기엔 접점이 적어 내가 섭외를 도왔는데, 이제는 무신사도 노하우가 쌓여 프로처럼 진행한다. 성수가 아니더라도, 브랜드가 지역에서 행사를 열 땐 로컬 매장과 협업해 상권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수를 가까이서 지켜본 시간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변화는?
제레박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매달 성수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이다. 5년 전만 해도 연무장길은 저녁 9시면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밤 10시까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외국인들이 성수를 찾는다. 공항 접근성도 좋지 않고 호텔도 하나뿐이라 관광객에겐 불편한 동네인데도, 팝업과 붉은 벽돌, F&B로 '제2의 명동'이라 불리는 걸 보면 볼 때마다 신기하다.
화면에 바짝 붙어 성수의 소식을 좇는 제레박
빠르게 변하는 성수를 보면서, 이 동네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길 바라나?
제레박어디를 걷든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레이어가 쌓인 동네가 되면 좋겠다. 지금 연무장길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가 몰려 성수의 핵심지가 됐다. 반면 북성수는 여전히 공장과 창고의 성수다움을 간직하고 있고, 뚝섬역 북단은 주거지의 로컬 감성, 서울숲 일대는 작은 매장이 많아 걷기 좋은 상권이다. 이렇게 블록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동네로 꾸준히 자리 잡아가길 바란다.
성수동은 거리마다 옷차림에서도 분위기가 읽히는 동네다. '성수다운 옷차림'이 있다면, 평소 스타일과 옷을 고르는 기준과 함께 들려달라.
제레박성수동스러운 룩을 다룬 콘텐츠를 보면 해마다 유행이 바뀌어서, 결국 성수다운 옷차림은 '가장 유행하는 패션'이 아닐까 싶다. 직장인, 주민, 관광객, 인플루언서가 뒤섞이고 잘 차려입은 외국인도 많아 글로벌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한두 시간 성수를 걸으며 봄가을엔 반소매와 쇼츠에 스니커즈, 겨울엔 숏 패딩처럼 기동성 좋은 차림을 즐긴다. 그 길에 패션 팝업과 무신사 메가스토어를 둘러보며 옷을 고른다.
'성수는 내게 ○○이다.' 한마디로 채운다면?
제레박성수는 내게, 인생을 바꿔준 귀인 같은 곳이다.
성수족발 강병옥 대표
족발 하나로 44년을 지켜온 자부심, 성수족발 강병옥 대표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족발, 먹어보면 왜 이렇게 큰소리치는지 알게 된다"
성수족발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강병옥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족발이다. 보통은 냉장이나 냉동 족발을 쓰는데, 우리는 생육만 쓴다. 그래야 식감이 살고 맛이 다르다. 재료도 전부 국내산만 쓰고, 삶을 때도 계속 불 조절을 해가면서 쫀득하고 야들야들하게 만든다. 하루 200~300개를 매일 같은 맛으로 내려면 이 과정을 절대 건너뛸 수 없다.
성수동에서 가게를 이어온 시간과, 그사이 성수라는 동네가 변해온 풍경이 궁금하다.
강병옥어머니가 1981년 장충동에서 족발 장사를 처음 시작했고, 1983년에 성수동으로 옮겼다. 간판 로고의 '1983'도 그래서다. 나는 다른 회사를 다니다가 어머니가 버거워하셔서 그만두고 들어왔다. 2009년부터니 이어받은 지 18년째다. 그사이 성수동이 공장 지대에서 지금 동네로 바뀐 게 신기하다. 공장 지대 시절에도 직장인 손님이 많았고 동네 노포였는데 2008년쯤 방송을 타면서 전국에서 찾아왔다. 그때부터 '서울 3대 족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수족발’ 매장 앞에서 갓 낸 족발을 든 강병옥 대표
어머니가 시작한 가게를 이어받은 이야기를 들려달라.
강병옥어머니가 시작한 거니까 나는 어깨너머로 배웠다. 어릴 때부터 족발 냄새를 맡고 자랐다. 평생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다 보니 이게 참 정직했다. 손이 들어간 만큼 맛이 나오고, 맛있으면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준다. 어머니가 지켜온 걸 내 대에서 무너뜨릴 순 없지 않나. 그 마음 하나로 왔다.
쫄깃한 족발과 푸짐한 곁들이가 어우러진 성수족발 한 상
성수족발만의 시그니처 한 접시와, 그 맛을 지키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한 가지를 들려달라.
강병옥우리 집은 메뉴가 족발 딱 하나다. 그러니 오시면 고민할 것도 없이 족발만 드시면 된다. 이것저것 벌여놓고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게 내 고집이다. 제일 신경 쓰는 건 찍어 먹는 양념 새우젓이다. 보통 집들은 양념 안 한 하얀 새우젓을 그냥 내주는데, 우리는 거기다 우리 집만의 양념을 딱 더해서 낸다. 그 한 끗 차이가, 어디 가서 못 먹는 맛을 만드는 거다.
포장 족발 너머로 손님을 맞는 성수족발 강병옥 사장
오래된 단골들이 성수족발을 계속 찾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강병옥언제나 변함없는 맛이다. 가장 오래된 단골은 어머니 때부터 오신 40년 단골들인데, 이유는 하나다. 어머니가 만들던 맛과 지금 맛이 똑같다는 것. 어릴 때 부모님 손잡고 오던 꼬마가 이제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집을 소개해줄 때는 정말 감사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단골손님 아드님이 미국 유학 중에 성수족발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부모님이 족발을 사서 미국으로 보내셨다. 나중에 그 아드님이 한국에 들어와 가게에 찾아와서는 미국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게 참 고마웠다.
성수를 찾는 사람들에게 '성수의 한 끼'로 가게를 소개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
강병옥성수에 오셨다면 우리 족발을 꼭 드셔보시라고 말씀드린다. 요즘은 블로그나 SNS를 보고 찾아오시는 분이 많은데, 외국 손님들도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성수족발이 맞느냐'고 묻는다. 말이 잘 안 통해도 다 드시고 나가면서 엄지를 척 들어 보이고, 기념사진도 같이 찍고 가실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성수의 맛은 ○○이다.' 한마디로 채운다면?
강병옥성수의 맛은 '백록담'이라고 하겠다. 백록담을 보려면 제주도까지 가야 하듯, 이 맛을 보려면 성수동에 와야 하니까.
한 팩 한 팩, 손수 담아 족발을 건네는 모습
처음 오는 손님께 꼭 추천하는 메뉴 조합이 있다면?
강병옥메뉴가 족발 하나뿐이니 추천도 족발이다. 부위는 앞다리를 권한다. 손님 열 분 중 예닐곱 분이 앞다리를 찾는데, 뒷다리보다 지방이 적고 고기와 껍질 비율이 잘 맞는다. 곁들임으로는 부추무침과 무채절임을 함께 드셔보시라. 느끼함도 잡아주고, 무채절임은 천연발효 사과식초로 만들어서 안심하고 드실 수 있다.
주문마다 칼을 들어 손수 썰어 내는 성수족발
족발이 손님상에 오르기까지,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강병옥좋은 놈으로 골라다가 핏물 빼고, 잡내 잡고, 몇 시간을 불 앞에서 삶고 또 삶는다. 이게 시간하고 정성은 못 속인다. 대충 하면 대충 한 맛이 딱 난다. 힘들지만 솥뚜껑 열었을 때의 냄새, 그거 맡으면 또 힘이 난다.
44년이면 좋은 날만 있진 않았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때와 그래도 계속하게 한 힘은?
강병옥왜 안 힘들었겠나. 장사라는 게 잘 될 때도 있고 파리 날릴 때도 있고. 동네도 이렇게 확 바뀌고, 별별 일이 다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힘들다 싶으면 꼭 옛날 단골이 문 열고 들어온다. '어이, 여기 아직 있네' 하면서. 그 말 한마디에 또 솥에 불을 올린다. 결국 사람 정(情) 때문에 버틴 거다.
44년째 성수동 골목을 지켜온 성수족발 간판
앞으로 성수족발이 어떤 집으로 남기를 바라나?
강병옥대단한 거 안 바란다. 그냥 지금처럼 언제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집. 나는 여든까지는 이 일을 할 생각이고, 아이들에게 물려줘서 3대가 이어가는 족발집이 되고 싶다. 성수가 아무리 번쩍번쩍해져도 옛날 그 맛이 그대로 있다. 그거면 됐다.
성수베이킹스튜디오 황석용 셰프 & 장은하 점장
기본을 지키는 빵을 만드는 성수베이킹스튜디오 황석용 셰프 (왼쪽) 와 장은하 점장 (오른쪽)
"좋은 빵은 특별한 재료보다, 기본을 얼마나 지키느냐에서 시작된다"
성수베이킹스튜디오 (라빠시옹빵 아카데미) 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황석용성수베이킹스튜디오는 거창할 것 없이 기본과 본질에 충실한 동네 빵집이다. 그리고 라빠시옹빵 아카데미는 그런 빵을 만드는 제빵사와 직원을 제대로 길러내는 교육 기관이다. 결국 같은 이야기다. 기본을 지키는 사람과 기본을 지키는 빵이다.
'성수베이킹스튜디오'와 '라빠시옹빵 아카데미'를 각각 운영하게 된 계기와, 성수라는 동네가 두 공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황석용성수라는 동네가 재밌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별 충돌 없이 같이 있다. 우리도 유행을 좇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서울숲 오가는 동네 분들이 매일 부담 없이 드실, 기본에 충실한 빵. 그거 하나면 됐다. 오래 사랑받는 빵집, 그게 목표다. 아카데미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이 자기 빵집을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성수역 쪽에 따로 열었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몸으로 배운 것들을 기본기랑 실습 위주로 그대로 넘겨주는 거다. 대단한 노하우라 할 것도 없고, 그냥 현장 이야기다.
성수베이킹스튜디오 매장 간판
성수베이킹스튜디오의 시그니처 한 가지와, 그 맛·완성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황석용우리를 제일 잘 보여주는 건 바게트다. 작은 매장인데 한 달에 만 오천 개 정도 굽는다. 많지 않나. 그러니까 매일 같은 품질을 내는 게 제일 어렵고, 또 제일 중요하다. 반죽 상태, 발효, 굽기 등 전부 기준대로 관리한다. 언제 오시든 똑같은 맛과 식감. 그거 하나 지키자고 다들 고생하는 거다.
처음 오는 분들께 꼭 권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황석용바게트 먼저 드셔보시라고 권한다. 담백한데, 씹을수록 밀 풍미가 슬슬 올라온다. 우리가 뭘 추구하는지 그 빵 하나에 다 들어 있다. 그냥 드셔도 좋고, 버터나 잠봉 곁들이면 또 다른 얼굴이 나온다. 식사빵의 매력이란 게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은근히 깊다.
세계 대회가 인정한 성수베이킹스튜디오의 시그니처 바게트
성수를 찾는 사람들에게 '성수의 한 입'으로 이곳을 소개한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
황석용화려한 디저트야 요즘 많다. 근데 매일 먹어도 안 질리는 좋은 빵 한 조각, 그 가치를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일상의 빵을 매일 정성껏 굽는다. 특별할 것 없이, 그냥 꾸준히.
'기본을 지킨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현장에서 기본을 지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황석용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밀가루랑 반죽을 이해하는 거다. 반죽 상태와 힘, 발효 정도를 모른 채 기술부터 익히면 순서가 거꾸로다. 성형 스킬은 그다음이고, 나는 거기서부터 제빵이 시작된다고 본다.
반죽을 다듬는 작업의 현장, 성수베이킹스튜디오의 내부 주방 모습
성수에서 빵을 구우며 현장에서 느끼는 동네와 손님의 변화는?
황석용2019년 작은 주말 빵집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매장도 커졌고, 2023년 독일 제빵대회 2등에 2026년 프랑스 제빵 월드컵 우승까지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많았다. 하지만 제일 감사한 건 찾아주신 손님들이다. 우리 성장은 매장이 커진 게 아니라 손님들이랑 같이 시간을 쌓아온 거라고 생각한다.
장은하예전보다 외국인 손님들이 정말 많이 늘었다. 여러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 빵을 좋아해 주시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외국인 손님들께는 성수를 기억하게 하는 빵집으로, 동네 분들께는 편하게 들르는 빵집으로 오래 남고 싶다.
오래 사랑받는 빵집으로 남기 위해, 앞으로 지키고 싶은 것은?
반죽 위로 덧가루를 치는 황석용 셰프
황석용가장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맛의 기억은 추억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먹는 장사는 결국 맛이 제일 중요하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오래 지나 다시 먹어도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 맛, 그 맛만큼은 안 변했으면 한다.
매일 같은 품질을 지켜내는 자리, 장은하 점장
장은하우리가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건 '동네가 사랑하는 빵집'이라는 처음 마음이다. 손님이 많아졌어도 결국 중요한 건 동네 분들이 편하게 들르고 오래 기억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로 기본에 충실한 맛을 지키면서 조금씩 더 나은 빵을 만들어가고 싶다.
라빠시옹빵 아카데미에서 예비 제빵사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황석용기본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기본기 없이 경력만 쌓다 보면 원리를 이해하기보다 자기 경험을 원리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 나중에는 소설을 쓰게 된다. 처음에 제대로 배우고 나서 경험을 쌓아야 그게 진짜 실력이 된다.
갓 구운 바게트를 들고 매장 앞에 선 황석용 셰프와 장은하 점장
'성수의 한 입은 ○○이다.' 한마디로 채운다면?
황석용성수의 한 입은 '기술이 만든 정성'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빵은 특별한 재료보다, 기본을 얼마나 지키느냐에서 시작되니까.
구두를 짓는 손, 동네를 기록하는 눈, 족발 한 그릇의 세월, 반죽에 담긴 정성. 유행보다 오래 남는 성수동의 진심은 이렇게 네 갈래로 이어진다. 화려해지는 동네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온 네 사람의 이야기가, 성수를 성수답게 만드는 이유였다.
2026 ISSUE 04. SEONGSU
〈무신사 스탠다드 페이퍼〉는 일부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제품 구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기사 편집 : 박찬호 | 디자이너 : 윤상은 | 자료 및 사진 제공 : 무신사 스탠다드
'인터뷰'는 무신사 에디터가 만난 영향력 있는 패션 피플의 인터뷰를 다룬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