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청춘의 소음 속 한로로가 고른 사랑의 언어
수많은 타인의 권태와 눅눅한 체취가 겹겹이 엉킨 퇴근길 지하철 안. 지독한 소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이어폰을 깊숙이 밀어 넣고 고개를 치켜든 순간, 낯선 선율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것이 나와 한로로의 강렬한 첫 조우였다. 도심의 탁한 공기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듯한 그 서슬 퍼런 음성. 세상의 이치를 담담히 선포하는 듯한 문장들은 짓눌려 있던 나의 어깨를 강하게 다독이며 '우리의 고생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렇게 한로로는 단숨에 나를 본인의 세계로 초대하며, 첫 만남만으로 내 청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귓가를 맴돌던 그 목소리는 어느덧 익숙한 위로가 되어 돌아왔다. 신곡과 함께 자신만의 선명한 색채를 담은 굿즈를 선보인 한로로. 정성껏 기록한 문장들과 그 속에 깃든 진심을 마주하기 위해 직접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유의 문장, 투명한 목소리
싱어송라이터, 한로로
무신사와 첫 만남이다. 독자분들께 첫인사를 부탁한다.
한로로만나서 반갑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다.
예리한 록 사운드 위에서도 가사의 결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단단한 힘이 느껴지지만, 사실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다고. 전공자가 아님에도 음악에 뛰어들게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나? 처음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스스로 본인의 재능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한로로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뿐만 아니라 글 쓰는 일을 즐겼다. 중학생 때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백일장에 나가기도 하고, 교내 대회에서 상도 받으며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어쩌면 글 쓰는 일에 조금의 재능은 있지 않을까 하고.
국어국문학도로서 단어 하나하나가 가진 무게를 기민하게 느낄 것 같다. 가사를 쓸 때 마지막까지 버티고 살아남아 문장에 안착한, 최근 가장 애틋하거나 머릿속을 맴돌았던 단어는 무엇일까?
한로로최근 발매한 신곡의 제목이기도 한 '애증'이다. 우리의 삶이 결국 애증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이 복잡한 감정을 노래로 풀어내려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고, 지금까지도 가장 깊게 붙잡고 있는 단어다.
음악가에서 소설가로, <자몽살구클럽>이라는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사를 쓸 때와 소설을 쓸 때,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꼈는지?
한로로소설은 문장의 길이부터 다르더라. 가사보다 훨씬 세밀하게 다뤄야 할 지점이 많았다. 그만큼 시간과 생각의 밀도가 크게 요구되는 작업이었지만, 서로 다른 결 속에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다.
한로로의 첫 번째 소설 작품이자 동명의 EP인 '자몽살구클럽'
소설 속 주인공들은 우정을 통해 서로를 구원하고, 해방을 경험한다. 마치 소라 네오의 영화 <해피엔드>에서 학생인 주인공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어른의 문법으로 채 길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예리하고 투명한 중학생의 시선을 그리기 위해, 작가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한로로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Hirokazu Kore-eda) 감독의 작품들을 거의 빠짐없이 보면서, 소외된 청소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지부터 들여다본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는 방식 또한 자연스럽게 고민했다. 중학생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귀엽고도 서툰 방식으로 서로를 보듬는 장면들을 상상하며, 그 특유의 순수한 결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몽살구클럽' 오피셜 콘셉트 포토
소설 속 인물들의 우정과 연대에 본인이 지나온 청춘의 한 페이지는 얼마나 투영되어 있나?
한로로꽤 많은 부분이 닮았다. 학창 시절, 학업을 비롯해 여러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친구들과 같이 쌓아간 작고도 즐거운 기억들이 큰 힘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 만약 그때 '우리 곁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좋은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고. 결국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사랑과 증오 사이, 애증의 심연
사랑과 미움은 결국 한 끗 차이, 그 치열한 애증의 기록
지난 4월 2일에 발매한 싱글 <애증>의 소개 글 중 '사랑은 죽 사랑일 수 없고, 미움은 죽 미움일 수 없다'라는 문장이 유독 마음을 건드린다. 이 모순적인 감정을 앨범의 테마로 잡은 배경이 궁금하다.
한로로우리 삶 속에서 긍정과 부정의 감정은 시소처럼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 양가적인 흐름을 짚어내고 싶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미움을 사랑으로 덮어내는 과정이니까. 그 치열한 과정이 지닌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애증'이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었다.
타이틀곡 <게임 오버 ?>를 통해 이 '헛구역질 나는 세계' 속에서도 절대 사냥당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한로로가 정의하는 '사냥당하지 않는 사랑'은 어떤 형태인가?
한로로서로를 물어뜯고 사냥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상태다. 미움을 끝내 극복하고 긍정과 희망으로 치환할 수 있는, 더 단단하고 회복력 있는 사랑의 형태를 의미한다.
<게임 오버 ?> 뒤에는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가 붙어 있다. '끝났다'라는 단정 대신 '정말 끝일까?'라는 의문을 던짐으로써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한로로음악하며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아왔다. 그 감정들 앞에서 조금은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달까. 미움받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이야기하겠다는 마음. 누군가는 나를 '게임 오버' 시키려 할지 모르지만, 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확신. 그 단단한 태도를 물음표에 담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 물음표는 의문이라기보다, '나는 절대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다'라는 다짐에 가깝겠다.
한로로맞다. (웃음) 난 절대 지지 않는다!
한로로는 미움 속에서도 기어코 사랑을 말하겠다는 다짐을 외쳤다
과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로로의 노래는 역설적으로 그 무서운 존재들을 가장 뜨겁게 껴안고 있다. 인간이 지닌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목격하면서도, 결국 그들에게 사랑을 알리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로로가끔은 타인의 추악함과 잔인함에 환멸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무기력함을 어떻게 이겨낼지 고민했다. 어쩌면 그들이 사랑을 몰라서 베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음악을 통해 단 한 번이라도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이번 <애증> 앨범에 담긴 노랫말 중 가장 애정이 깃든 한 줄을 꼽는다면.
한로로<게임 오버 ?>의 '내일도 무사히 만나요.'라는 문장이다. 예전에 인스타그램으로 받은 질문, '사랑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에 대한 답이었다. 그 이후로 나와 팬분들 사이에서는 '사랑해'를 대신하는 문장이자 굿나잇 인사처럼 자리 잡았고. 이 문장을 이번 노래에 담으면서 그 의미가 더 깊어졌다. 둘 사이의 언어를 넘어, 이 다정한 문장이 조금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청춘의 사계, 무사히 내일을 마주합시다
우리의 불안을 밀어낼 작은 패기, 한로로의 노래가 청춘인 이유
모든 삶의 궤적을 '청춘'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는 노래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청춘의 필수 조건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동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을 내딛는 나아감일까?
한로로무조건 후자다. 청춘에게는 불안을 밀어붙이는 패기가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불안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고, 많은 분이 내 음악에 공감하는 이유도 그 안에 담긴 작은 패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랑을 알려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고백은 참 다정하면서도 묵직하게 들린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사랑이 무엇인지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고 청한다면, 오늘의 한로로는 어떤 문장을 건네고 싶은지?
한로로음…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갑자기 고백받은 기분이다.
한로로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다. (웃음)
더콜디스트모먼트 × 한로로 무신사 에디션
더콜디스트모먼트 (THE COLDEST MOMENT) 와 함께한 무신사 에디션을 통해 본인의 굿즈를 선보였다. 디자인에 담긴 메시지가 궁금하다.
한로로티셔츠 속 퍼즐 로고에 집중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서로 맞지 않아 고통받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맞물리는 순간 터져 나오는 애정이 있다. 그 연결의 소중함을 내 이름과 퍼즐 형태로 풀어냈다.
티셔츠에 니트, 키링 등 무신사 에디션 아이템이 꽤 다양하다. 그중 평소에 가장 즐겨 입거나, 팬들에게 '이것만큼은 꼭 소장했으면 좋겠다.' 싶은 아이템과 그 이유를 소개해 줄 수 있을까?
한로로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 앞서 이야기한 퍼즐 로고가 가장 크게 담겨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어긋난 마음들이 맞물리길 바라는 한로로의 추천 아이템
이제 곧 페스티벌 시즌이다. 무대 위에서 이번 무신사 에디션 굿즈를 걸친 팬들과 눈을 마주친다면, 그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단단한 유대감이 생길 것 같은데. 그들에게 무대 위에서 건네고 싶은 첫마디를 미리 골라본다면 무엇일까?
한로로퍼즐이다! 내 퍼즐의 짝을 찾았다! (웃음)
데뷔 초창기, 계속 이루고 싶은 목표로 언급했던 단독 콘서트까지 이뤄냈다. 그다음 목표나 이번 무신사 에디션처럼 하고픈 새로운 도전이 있다면.
한로로그때그때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정해두진 않았지만, 어떤 도전이든 즐겁게 마주하고 싶다.
꿈꿔왔던 단독 콘서트 그 너머, 한로로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떤 불안에도 한 걸음 내딛는 청춘의 표본 같다.
한로로일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웃음)
불안을 딛고 도약할 우리에게 바치는 한로로의 거침없는 응원가
한로로의 문장과 선율을 나침반 삼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에게 마지막 한 마디 부탁한다.
한로로청춘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기 어려운 시기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누군가의 "한번 해봐"라는 말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와 내 음악이 언제나 그 말을 건네는 존재로 곁에 있었으면 한다. 그러니 너무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 더 단단하게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긴 대화의 여운을 곱씹으며 자문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한로로의 노래 속에 각자의 초상을 투영할까. 아마도 그건 쉽게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누군가의 다정함에 매료되어 다시 사랑을 꿈꾸고 마는, 우리 안의 지독하고도 무구한 굴레 때문일 것이다. 결국 세상의 무력함을 이기는 건 투박한 미움이 아닌, 끈질긴 다정함이라는 불변의 법칙. 그 다정함을 동력 삼아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을 평온하게 보내는 것. 그것이 한로로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사려 깊은 마음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기약 없는 불안 대신, 이 다정한 약속을 믿어보기로 한다. 우리, 내일도 무사히 만나요.
에디터 : 박다원 | 포토그래퍼 : 박유주 | 비디오그래퍼 : 김후인, 이정재 | 리터쳐 : 심재남 | 디자이너 : 고승연 | 어시스턴트 포토그래퍼 : 박성민 | 인터뷰이 : 한로로 | 자료 제공 : 한로로 인스타그램 (@hanr0r0), 어센틱, 더콜디스트모먼트
‘인터뷰’는 무신사 에디터가 만난 영향력 있는 패션 피플의 인터뷰를 다룬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