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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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악마도 반한 정샘물의 견고한 뷰티 유니버스

2026.04.10·조회 0·

트렌드가 하루 멀다 하고 요동치는 뷰티 씬에서 30년 넘게 대체 불가능한 고유명사로 자리한 이름이 있다. 대한민국에 '투명 메이크업'이라는 패러다임을 처음 제시하고, 이제는 K-뷰티의 대장주로서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아티스트 정샘물. 완벽주의적 디테일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공존하는 그의 견고한 뷰티 유니버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고유의 선과 색을 찾아내는 정샘물의 시선

정샘물 101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정샘물

만나서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요즘 근황에 대해서 알려달라.

정샘물반갑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정샘물이다. 요즘은 아카데미 운영과 더불어 해외 사업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K-뷰티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무거운 책임감과 보람을 느끼며 임하는 중이다.

최근 뷰티 서바이벌 <저스트 메이크업> 이 큰 화제를 모을 만큼, K-뷰티와 메이크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수십 년간 업계 최전선에서 이 변화를 이끌어온 선구자로서, 감회가 궁금하다.

정샘물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업계에 몸담은 지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내 자리에서 성실하게 해왔을 뿐인데, 이제는 전 세계에서 K-뷰티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의 제품력과 섬세한 표현법에 열광해 주신다. 내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온 지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 놀라우면서도 깊이 감사한 마음뿐이다.

30여 년간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의 메이크업을 전담해 오며, 사람의 숨겨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예리한 시선으로 타인을 관찰해왔다. 정샘물이 처음 마주하는 사람의 숨겨진 매력을 끌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유심히 관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정샘물상대방의 눈빛. 아티스트로서 누군가의 고유한 캐릭터를 살리려면,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사람만의 에너지를 캐치해야한다. 눈을 시작으로 피붓결, 머릿결, 입고 있는 스타일로 점차 시선을 확장해 나간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메이크업을 구현해도, 그 사람 본연의 분위기와 이질감이 든다면 그건 실패한 메이크업이다. 모던함, 화려함, 큐트함 등 각기 다른 본질을 파악하고 교감하는 것, 그것이 관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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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정샘물은 탕웨이 메이크업으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jungsaemmool11

정샘물의 관찰력의 싹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한 화장이 획일화 되어있던 뷰티 씬에 '투명 메이크업'이라는 신선한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결점을 가리기에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주근깨마저 매력으로 살리는 2026년식 '투명 메이크업'은 어떻게 진화했다고 보는가?

정샘물90년대에는 예쁜 얼굴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이 있었다. 화면 속 조명과 환경 때문에 억지로 화장을 두껍게 해야만 하던 시절, 나는 그 환경을 뛰어넘어 사람 본연의 맑음을 살리고 싶었다. 당시엔 내추럴하게 표현할 제품조차 없어서 파우더와 립스틱을 일일이 으깨고 섞어 그 사람 피부 톤에 딱 맞는 커스텀 컬러를 만들었다. 퍼스널 컬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그걸 시작한 거다 (웃음). 2026년의 투명 메이크업은 초개인화로 진화했다. 청순한 사람의 내추럴과, 글램하고 섹시한 사람의 내추럴은 표현법도 색상도 완전히 다르다. 무작정 얇게 바르는 게 투명 메이크업이 아니다. 각자가 가진 강점, 예를 들어 매력적인 주근깨나 독특한 눈매 등을 배제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게 톤을 맞추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의 진짜 투명 메이크업인 것 같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추구미 (추구하는 이미지)' 와 본인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 상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조율하는가?

정샘물나만의 트릭이 있는데, 얼굴을 반반씩 다르게 메이크업해 준다. 한쪽은 고객의 추구미대로, 다른 한쪽은 내가 캐치한 그 사람의 고유미대로. 그러고 나서 거울을 보여준 후 고객의 선택에 맡긴다. 추구미를 무작정 좇는 건 외부의 기준에 휩쓸린 결과일 때가 많다. 고유성을 잃고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국 마음이 병들고 성형 중독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나는 전문가로서 “네가 가진 이 모습이 얼마나 강력한 장점이고 무기인지”를 일깨워준다. 본래의 코어를 단단하게 잡은 후에 다양한 스타일을 응용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인터뷰 중인 정샘물

미의 기준은 늘 요동치고, 최근엔 숏폼을 통해 인스턴트 뷰티 트렌드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이와 같은 뷰티 소비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더불어 이 거대한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정샘물의 시선으로 꿰뚫어 본 2026년 뷰티의 진짜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샘물요즘 쏟아지는 트렌드들을 보면 정말 재밌다. 메이크업은 정답을 정해놓고 숙제하듯 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펀 (Fun)'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6년의 키워드는 '다양한 나의 변주'라고 생각한다. 데이와 나이트, 썸머와 윈터 등 상황에 맞춰 어제는 투명하고 청초했다가, 오늘은 영화 속 악마 편집장처럼 도회적이고 섹시해질 수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즐거운 놀이가 메이크업이지 않나. 가볍게 쏟아지는 트렌드들을 겁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내게 맞는 요소들을 쏙쏙 뽑아 즐겼으면 좋겠다.

악마도 반한 정샘물의 디테일

아티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만, 그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도 컸을 것 같다. 하지만 2025년 포브스 코리아 고객신뢰도 1위 대상을 차지하며 대중의 완벽한 신뢰를 증명해 냈다. 지난 10년간 소비자들의 굳건한 신뢰를 지켜내기 위해, 첫 론칭 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타협하지 않은 정샘물만의 원칙이 있다면?

정샘물우리는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 시류에 편승해 어디서 본 듯한 제품을 대충 찍어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싶은 정샘물만의 확실한 킥이 필요하다. 우리 상품기획팀이 매번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 원칙만큼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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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에 위치한 정샘물 101 전경

국내를 넘어 K-뷰티 선두주자로서, 미국, 중국을 넘어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 내 1,164개 오프라인 매장 입점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글로벌 코덕들을 완벽하게 매료시킨 정샘물 뷰티만의 대체 불가능한 '킥'은 무엇이라 분석하는가?

정샘물트라이앵글 마케팅 구조다. 정샘물이라는 브랜드는 뷰티 살롱, 아카데미, 그리고 제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아카데미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살롱에서 셀럽과 고객의 얼굴에 직접 테스트하며 현장의 생생한 니즈를 파악한다. 제품에 아주 미세한 문제점이라도 있으면 현장에서 즉각적이고 냉정한 피드백이 날아온다. 세상에 나오기 전, 가장 까다로운 전문가들의 손끝에서 혹독한 실전 검증을 거친다는 것. 그 압도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우리의 진정한 킥이다.

그 압도적인 성과의 기저에는 결국 타협 없는 제품력이 있다. 아티스트이자 디렉터로서 제품 개발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깊이까지 관여하고 있는가?

정샘물처음 기획안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최종 출시 직전까지, 정말 치열하게 관여한다. 상품기획팀에서 신제품을 제안하면 "이게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던진다. 명색이 아티스트 브랜드인데 시중 제품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성이 없다면 출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발이 70~80% 이상 진행됐더라도 원하는 타격감이 나오지 않으면 과감하게 엎어버린다. 무의미하게 가짓수만 늘리는 건 모두에게 에너지 낭비다. 하지만 고집대로만 밀어붙이는 건 아니다. 내가 아티스트의 욕심으로 특정 색조를 만들고 싶어도, 정샘물은 베이스 제품군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기획팀에서 재고 부담을 이유로 단호하게 컷 할 때도 있다 (웃음). 완벽한 결과물을 원하는 '나'와 현실적인 비즈니스를 고려하는 '팀원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조율하는 이 건강한 팀워크가 정샘물의 제품력을 빚어내는 핵심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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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샘물 l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에디션 화보

4월 9일 무신사에서 단독 선 론칭한 ‘정샘물 l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에디션’에 대한 기대감도 뜨겁다. 패션 씬의 바이블과 K-뷰티 마스터의 만남이라는 이 압도적인 협업이 어떻게 성사되었는지 궁금하다.

정샘물개인적으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를 너무 좋아한다. 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지 않나. 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에는 패션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철학적인 메시지들이 많다. 평소 내가 강조해 온 가치관들과 깊이 공감되는 포인트가 많았기에,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이 세계관 안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미란다의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앤디의 당당한 성장은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두 캐릭터가 보여준 주체적인 애티튜드를 이번 에디션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무신사 고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정샘물영화를 보면 늘 완벽하던 미란다가 호텔 방에서 앤디에게 헝클어진 머리와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화려한 편집장의 가면을 벗어던진, 상처받고 지친 중년 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부스스한 내 몰골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바빠도 거울 속의 진짜 나와 대면하며 "오늘도 잘 살아보자"라고 나를 다독이고 코어를 단단히 다지는 거다. 이 아침의 고요한 빌드업이 있어야만,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타인의 시선이나 상황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이번 에디션에는 바로 이 주체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두 캐릭터가 보여준 거대한 대비를 블랙 앤 화이트, 그리고 강렬한 레드 컬러로 풀어내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뉴욕 시티의 에너지를 더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오롯이 내 안의 열정을 깨우는 것에 집중하며, 거울 속 나와 당당하게 마주하자는 것. 그것이 이번 에디션을 통해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다.

정샘물ㅣ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에디션

코덕들이 절대 놓쳐선 안 될 이번 에디션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더불어, 이 특별한 아이템들을 일반인도 전문가의 터치처럼 200% 활용할 수 있는 정샘물만의 비밀 꿀팁을 전수해 달라.

정샘물이번 컬렉션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정샘물 시그니처인 맑고 투명함과 영화 주인공들의 도회적이고 시크한 포인트의 완벽한 시너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 브랜드에서 가장 자신 있는 최정예 베이스 라인업 (물크림, 쿠션, 쿠션 블러셔, 미스트 등) 에 강렬한 엣지를 더해줄 메탈 세럼 립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묶었다. 먼저, 아침 스킨케어 첫 단계에 '물크림'을 발라 피부 속에 맑은 광을 꽉 채운 뒤, 보통 화장 마지막에 하는 쿠션 블러셔를 먼저 꺼낸다. 나는 기미 등 잡티가 좀 있는 편인데, 쿠션을 바르기 전에 블러셔를 볼과 눈두덩, 턱선까지 펴 발라주면 컨실러를 두껍게 올린 것보다 훨씬 내추럴하게 잡티가 커버되면서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맑은 생기를 연출할 수 있다. 마지막 방점은 지속력과 디테일이다. '피팅 미스트'를 뿌려 견고하게 베이스를 고정하고, '메탈 세럼 립'으로 룩을 완성한다. 입술에 닿는 순간 즉각적인 쿨링 효과를 주는 메탈 어플리케이터가 지저분한 각질이 매끈하게 잠재워줘서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듯 도회적이고 완벽한 립을 완성할 수 있다.

마스터의 파우치가 궁금하다

정샘물의 실제 파우치

무신사 유저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다. 정샘물이 실제 사용하는 애장템이 궁금하다. 파우치 속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아이템을 소개해준다면?

정샘물해외 출장과 비행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라, 내 파우치는 건조한 기내와 다양한 환경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매일같이 사용하는 핵심 애장템들만 꺼내봤다.

물크림내가 직접 필요해서 만든 제품이자, 스킨케어에서 절대 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아이템이다. 피부의 속보습을 완벽하게 잡아주고, 글로우한 상태로 24시간 동안 메이크업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준다. 쿠션이나 파운데이션에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섞어 바르면, 피부 온도와 만나 제형이 쫀쫀해지면서 원래 내 피부인 듯 투명하고 맑은 광택이 살아난다.

립 꿀 조합최근 가장 즐겨 바르는 립 3종이다. 방문하는 나라의 무드별로 립 컬러를 바꾸는 편인데, 가장 기본 베이스로는 '뉴클래식 샤인 립스틱 디어베이지'를 즐겨 바른다. 칙칙한 입술 색을 페일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서는 무드에 따라 새로운 컬러를 얹는다. 최근 출장을 자주 갔던 싱가포르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태양빛에 어울리도록 탠 (Tan) 한 컬러감의 '글로우래스팅 틴트 소프트 베이지'를 바르고, 서울에 오면 도시 특유의 회색빛에 맞춰 '핑키 모브' 컬러로 바꾼다. 머무는 도시의 무드에 맞춰 립 컬러를 바꾸면 훨씬 당당해지는 기분이다.

프레데릭 말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이 향수를 뿌린 날에는 사람들이 꼭 물어보더라. 나는 향수를 고를 때 여러 향을 뿌려두고 몇 시간 뒤에 맡았을 때 내 체취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향수를 선택하는 편이다. 이 향수는 선물 받아서 처음 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체취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요즘 잘 뿌리고 있다.

컨투어링 & 립 쉐이퍼머리를 자주 묶는 편이라 헤어라인에 진심이다. 헤어라인이 비어 보이지 않도록 가루 날림이 없는 크림 타입의 '아티스트 페이스 팔레트 #컨투어'로 빈 곳을 꼼꼼하게 메운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중안부가 길어 보이는 고민이 생겼는데, 최근 이사배 아티스트가 선물해 준 '투슬래시포 스컬프트 립 쉐이퍼'로 립 라인을 깔끔한 오버립으로 정돈해 중안부가 훨씬 짧아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파우치 속 제품들을 소개하는 정샘물

흔히 "단점을 가리지 말고 장점을 살려라"라고 하지만 실전에서는 쉽지 않은데. 고객이 가리고 싶어 하던 치명적인 콤플렉스를 오히려 자신만의 매력적인 무기로 뒤바꿔주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나?

정샘물해외에서 VVIP 프라이빗 레슨을 자주 진행하고 있는데, 한 번은 평생 가족과 회사를 위해 바쁘게 사느라 진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며, 클래스 후 펑펑 눈물을 쏟은 고객이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얼굴에서 맘에 들지 않는 단점들만 찾아내어 무조건 진한 화장으로 숨기려고만 하셨다. 하지만 그 분이 가리고 싶어 하던 그 결점들이 내 눈에는 어떻게 매력적인 선과 색으로 보이는지 설명해 주며, 본연의 매력을 투명하게 끌어올리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화장을 덜어낼수록 숨겨져 있던 자신만의 고유함이 피어났고, 거울 속에서 처음으로 산뜻하고 당당한 '나'를 만났다며 벅차하셨다. 메이크업은 단점을 숨기는 위장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애티튜드마저 변하는 고객들을 볼 때, 아티스트인 나 또한 깊은 치유를 받는다.

이번 영화 협업부터 정샘물의 평소 룩을 보면 뷰티만큼이나 패션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정샘물만의 확고한 패션 철학이나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 혹은 추구미는 무엇인가?

정샘물숍을 오픈한 이후로 컬러풀한 옷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거울을 볼 때 내 옷차림이 고객의 시선을 빼앗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온전히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는 블랙 앤 화이트를 교복처럼 챙겨 입는다. 여기에 직업 특성상 팔다리 움직임이 편해야 하므로 활동성은 필수다. 아티스트로서의 엣지는 지키면서 활동성까지 좋은 블랙 앤 화이트 룩으로는 사카이 (Sacai) 나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cons)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고, 해외 출장 시에는 한국의 미를 알릴 수 있는 오우르 (Ouwr) 같은 개량한복 브랜드도 즐겨 입는다. 현장에서 활동하기 편안하면서도, 전문가다운 엣지와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패션의 핵심이다.

평소 블랙 앤 화이트 컬러를 즐겨입는 정샘물 @jungsaemmool11

결국 패션과 뷰티는 하나로 연결된다. 그날의 룩과 메이크업의 밸런스가 무척 중요할 텐데, 오늘 입은 옷의 무드나 컬러에 맞춰 메이크업 톤을 결정하는 정샘물만의 절대 공식이 있다면 하나만 공유해달라.

정샘물가장 먼저 옷의 무드와 그 도시의 분위기에 메이크업을 철저하게 맞춘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등 각 도시가 뿜어내는 특유의 모드가 있지 않나. 내가 머무는 곳의 공기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패션 피스를 먼저 고르고, 그 결에 맞춰 메이크업의 톤과 헤어스타일도 유연하게 바꾼다. 그다음 메이크업에 적용하는 절대 공식은 철저한 ‘원 포인트’다. 아이 메이크업에 힘을 주면 립은 색을 거의 빼고, 반대로 립에 레드 등 강렬한 포인트를 주면 아이 메이크업은 브로우 정도만 깔끔하게 정돈한다. 패션이든 뷰티든 과유불급이다. 욕심을 덜어내고 한 곳에만 확실하게 집중해야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고 세련되어 보인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로부터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정샘물 역시 30년 넘게 치열한 뷰티 씬에서 최정상을 지켜온 완벽한 프로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프로에게도 흔들림은 있었을 터. 수십 년간 커리어를 이어오며 피할 수 없는 매너리즘이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탄탄하게 다잡은 비결은 무엇이었나?

정샘물정말 힘들 땐 엉엉 운다 (웃음). 풀릴 때까지 울고, 몸이 부서질 정도로 청소를 하면 복잡했던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하지만 흔들리는 나를 다잡고 지금의 정샘물을 만든 진짜 비결은 다름 아닌 ‘꾸준한 글쓰기’다. 나는 10년 단위로 내 삶의 계획과 목표를 세밀하게 정리해 둔다. 지금 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간절하게 써 내려간 그 기록들이, 막막했던 내 삶을 이 자리로 이끌어준 가장 강력한 로드맵이 되었더라. 17살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 연세대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 평범하게 사는데 '왜 나만 이런 진흙탕 속에 있어야 하나' 원망스럽고 앞이 캄캄했다. 그때부터 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바라는 미래를 일기장과 스크랩북에 닥치는 대로 썼다. "나중에 저 강단에 서는 교수가 될 거야." 허황된 꿈 같았지만 일단 적었다. 놀랍게도 30년 뒤,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 연세대학교 화학생명공학부 강단에 교수로 3년간 섰다. 47세까지 내가 적어둔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 지금은 57세의 꿈을 적고 그곳을 향해 가는 중이다. 결핍과 절망은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훌륭한 회로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고 기록한 치열한 시간들이 지금의 단단한 정샘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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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화학생명공학부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정샘물 @jungsaemmool11

스킨케어, 색조를 넘어 비건 스킨케어, 헤어케어, 키즈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K-뷰티의 선구자로서 '정샘물 뷰티'가 이 모든 확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뷰티 유니버스는 어떤 모습인가?

정샘물브랜드 철학인 "아름다움은 너로부터 시작된다 (Beauty Starts from You)" 그 자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는, 가장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 사실을 온전히 믿을 때 진짜 아름다움이 시작된다고 믿고. 영혼 없는 기술적 화장은 사람을 성형 중독에 빠뜨릴 수 있지만, 자기 본연의 가치를 깨닫고 얼굴에 붓을 터치하는 행위는 내면의 자존감까지 건강하게 세운다. 각자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믿고, 그 당당한 에너지가 가족과 커뮤니티로 퍼져나가는 선한 영향력. 그것이 내가 꿈꾸는 정샘물의 뷰티 유니버스다.

K-뷰티를 이끄는 뷰티 아티스트가 아닌, 온전한 ‘인간 정샘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비전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정샘물수많은 꿈들을 이뤄왔지만, 지금 앞으로의 삶에서 가장 바라는 단 하나의 비전은 ‘건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결국 모든 것의 중심은 '나의 건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체력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내 주변의 소중한 관계들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내가 건강하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고, 내 브랜드의 철학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 내 주변의 모든 우주가 평온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건강하게 가꾸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앞으로의 삶이다.

성수에 위치한 정샘물 101

마지막 질문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획일화된 기준에 지쳐, 스스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에게 메이크업 브러쉬 대신,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면?

정샘물가장 먼저 남과 나를 비교하는 스위치를 당장 끄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결점이라 생각하며 숨기고 싶어 하는 그 부분은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돋보이게 할 대체 불가능한 무기다. 아침에 눈을 떠 거울 속 부스스한 자신과 마주할 때, 오직 거울 속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보라.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분명한 고유의 이유가 있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굳게 믿고, 10년 뒤의 당당한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나답게 가꿔 나가길 바란다. 모든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붓을 들기 전에 이 사실부터 굳게 믿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선과 색을 품고 있는 예술 작품이다.

인터뷰 내내 정샘물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결핍을 동력 삼아 스스로 빛나는 법을 깨우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었다. 메이크업은 얼굴에 색을 칠하는 위장이 아니라, 내면의 고유한 본질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투명한 통로라는 것. 악마처럼 깐깐하고, 프라다처럼 우아한 정샘물의 뷰티 유니버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찾아주며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에디터 : 이혜은 | 포토그래퍼 : 박유주 | 디자이너 : 이서영 | 인터뷰이 : 정샘물

'인터뷰'는 무신사 에디터가 만난 영향력 있는 패션 피플의 인터뷰를 다룬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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